Q 우리 아이는 집에서는 말을 잘하는 편인데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발표를 잘 하지 못해요. 학부모 공개 수업이 있어서 아이의 교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수업태도를 살펴보았더니 앉아 듣기만 해요. 우리아이 같이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하기를 잘 못하고, 듣는 태도가 좋지 않은 아이는 어떻게 지도하나요? A 우리 속담에 ‘말...
[일:] 2013년 04월 02일
Q 초등학교 2학년 남자 아이를 둔 엄마입니다. 저희 아이는 받아쓰기 점수가 너무 안 좋아요. 성격이 산만하고 집중력이 부족한 것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받아쓰기를 잘 할 수 있을지 좋은 방법이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A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흔히 받아쓰기 시험을 자주 봅니다. 주로 읽기 교과서에 나오는 틀리기 쉬운 문장을...
Q. 우리 아이는 사회 공부를 무척 부담스러워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제 입장에서도 가정에서 사회 공부를 어떻게 안내해야할 지 암담하답니다. 예전에 제가 학생일 때는 사회공부는 무조건 외우는 과목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배우는 교과서를 보면 외워야할 것도 많지만 활동하면서 생각해야만 하는 내용으로 많이 구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과목은 어떤 목표를 갖고...
고등학교 학생의 경우 사교육을 한 시간 받는 것보다는 같은 시간 혼자 공부하는 것이 학업 성적을 올리는데 두 배 가까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희삼 연구위원이 28일 발표한 “학업성취도 분석은 초·중등교육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경우 사교육의 시간당 성적향상폭 비율은 자습에 비해 0.69(영어), 0.62(수학)에...
역사로 남은 민족의 요람 인성학교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중국 주요 도시에는 한인 밀집지역인 코리아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오늘날 외국인으로 살기에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이곳에서 불과 몇 십 여년 전 우리 민족이 겪었을 설움과 어려움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상하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설립하는 등 항일 투쟁의 역사가 전개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하이가 먼저 생각날 것이다.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가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비록 ‘역사’가 딱딱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었던 상하이에 살고 있는 우리로써 임시정부의 역사를 아는 것은...
오늘날 상하이임시정부(大韩民国临时政府)는 한국인이 상하이에 오면 한번쯤은 가보는 곳이다. 낡은 주택가에 위치한 상하이임시정부는 현재 상해시 정부가 관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솔직히 상하이임시정부는 어렸을 때 몇 번이나 이미 가본적이 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처럼 임시정부가 뭐였는지 잘 알지 못했고 그저 ‘역사적인 곳이구나’라고만 생각하며 둘러봤다. 하지만...
오래 전 부터 우리나라와 중국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만큼 중국 땅에 남겨진 우리나라의 흔적들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중 일제 강점기 때 우리나라를 위해 일본의 세력에 맞서 투쟁하던 독립운동가분들의 자취도 특히 많이 볼 수 있다. 상해 거주 한국인이라면 다 한번쯤 가봤었을 상해 임시 정부,...
홍커우구(虹口区)에 위치한 루쉰공원은 도심 속에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기 좋은 장소로 상하이 시민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 이 공원은 한국인들이 특히나 애착이 가는 곳이다. 이곳이 바로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한 역사적 장소이고 윤봉길 의사 의거지 매헌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윤봉길 의사 매헌기념관은 2003년 12월 4일 개관하였으며, 총 2층짜리 정자로 구성되어...
한국은 1919년의 3.1 운동 후 조선 총독부에 맞서 독립을 위해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 및 선포하였다. 8.15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을 통할하는 최고기관으로 활약하였지만, 일본의 중국 본토 침략에 따른 탄압을 피해 약 8차례 이동하다가 일제 말기인 1940년 총칭으로 이전하였다. 김구 선생은 1932년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 또 이덕주와 유진만을 통해 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