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상하이 274] 서재 이혼시키기](https://shanghaibang.com/wp-content/uploads/2025/03/20250318120900_8494.jpg)
틈나면 찾아가는 작은 책방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문득 비슷한 이름의 다른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을 재미있게 읽은 터라 책장을 스르륵 넘겨보니 그냥 일상을 적어놓은 수필이어서 다른 책을 들고 돌아왔는데 얼마 후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이 자꾸 눈에 들어와 결국은 구입하고야 말았다.
책을 여러 권 함께 읽는 경우가 많아 이 책도 다른 책들과 섞어서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조금씩 천천히 읽어 나갔다. 함께 구입한 다른 책들이나 같은 작가의 [지지 않는 하루]에 비해 읽는 속도가 더딘 건 각각의 이야기에 자꾸만 나를 대입해 보게 되어서인 것 같다. 작가가 글의 시작 부분마다 화두처럼 던지는 글들이 본문을 읽기 전에 그리고 읽은 후에도 나를 자꾸만 생각에 빠뜨린다. 그래서 바로 다음 글로 옮겨 가기가 어려워진다.
작가는 남편과 공유했던 서재를 이혼시키기면서 섞여 있을 때는 잘 몰랐던 취향과 기질의 다름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계기로 닮음과 다름 사이에서 발견한 일상의 이야기들을 자신의 시선으로 이 책에 담았다고 한다. 루브르 데생 수업이라는 글의 서두에 이런 글이 있다. <인생에서 주인으로 사는 비결은 ‘해야 하는 일‘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을 희생하지 않는 것이다. p.148>
“돈을 많이 준다고 미친듯이 일만 하는 것이 무슨 인생이야?” 작가의 딸이 지금 하는 일을 선택하고 고액의 직업 제안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을 닮은 딸의 생각에 공감하며 시간을 내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딸을 위해 엄마는 루브르 데생 수업을 생일 선물로 제안한다. 살다 보면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인지 해야 할 일인지 생각하지 않고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그 일을 자꾸 미루고 사는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자꾸 질문해야 한다. 알고 있다면 바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방법과 시간을 내고 말이다.
나는 원래 독서를 좋아했지만, 서평의 한 자락을 맡게 되면서 처음에는 책을 읽는 일이 서평 때문에 해야 할 일의 범주에 들게 된 건 아닌가 생각하며 부담을 가졌었다. 그런데 이번 서평을 준비하면서 이 일이 바쁜 일상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며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책을 읽을 때마다 이전보다는 더 자세히 책을 살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즐거움에 무뎌지지 않는 기술, 본문을 읽기도 전에 얼마 전에 다녀온 여행이 생각났다. 사는 동안 나는 여행을 쉽게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여행을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니고 어쨌든 떠나고 보면 닥치는 일들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큰 틀만 짜고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 무질서에 나를 던져보며 여행을 즐겼다. 하지만 얼마 전의 여행은 다른 점이 있었다. 계획을 세세하게 세웠다는 것은 아니고 설레지 않은 첫 번째 여행이어서 나 스스로 너무 당혹스러웠다. 여행을 준비하고 비행기에 오르기까지 이렇게 무덤덤해도 좋은 건지 나도 나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행히 여행지에 도착하니 갑자기 바뀐 환경 덕분에 다시 여행의 즐거움과 설렘을 찾아서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하기는 했지만 마치 이번 여행 이후와 그 이전의 내가 어떤 경계로 나뉘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즐거움에 무뎌진 걸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자꾸만 책을 펼쳐놓고 생각에 잠기느라 아직 다 읽지 못하고 있다. 느릿느릿 읽고 있지만 결코 멈춰 선 시간들이 아깝지 않다. 내 삶 속에 공존하는 사건과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스스로를 알아가게 되는 시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주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