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은 북한에서는 의미가 깊은 날이다. 구소련 공산당과 당시 북한 주둔군 사령부였던 소련 붉은 군대 제 25군 정치부의 전폭적인 도움과 지휘 아래 노동당의 전신인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지금으로부터 66년 전인 1945년 10월 10일에 창건된 것이다.
이때부터 북한은 10월 10일을 “조선 노동당”의 창건일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0일 남북한에서 커다란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났다 첫째는 이날에 김정일의 삼남인 이제 겨우 26세 먹은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의 후계자로 대외에 공식 알려진 것이다.
북한은 2010년 9월 28일 당대표자회의를 열고 김정은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김정일의 후계자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65주년 경축 대규모 군퍼레이드를 열고 김정은을 김일성 광장의 주석단 한가운데 김정일과 함께 서게 하였다. 구소련에 의해 창건된 북한 노동당이 김일성, 김정일을 거쳐 3대인 김정은의 손에까지 들어간 것이며 왕조처럼 김씨왕조의 3대세습이 공식화된 날이 된 것이다.
북한에서 떠들썩한 “경축행사”가 벌어지고 있던 바로 그 시각 남한에서는 전 북한 노동당 주체사상담당비서였던 황장엽 선생이 사망하였다.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 북한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날에 하늘로 올라가신 것 같다. 조국과 민족의 통일, 그리고 북한 인민해방이라는 숭고한 뜻을 펴보지 못하고 한국에 온 지 13년만에 돌아가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황장엽 선생은 1997년 2월 12일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으로 망명하였다. 그의 망명 소식은 순식간에 미디어를 통하여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가 망명하자 해외의 유명한 한 방송사가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 황비서의 망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었다. 필자는 서슴지 않고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소련공산당의 이론담당비서 수슬로프가 미국에 망명한 것과 같습니다.” 모스크바 종합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김일성의 이론담당 서기로, 김일성 종합대학 총장으로, 당 과학담당비서와 국제담당비서로,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 수십년간 김부자를 최측근에서 보좌한 사람이 황선생이었다. 그리고 북한이 그토록 온 세계에 대고 자랑하던 주체사상도 황선생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황선생의 망명은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특히 북한 최고위간부 자리인 당중앙위원회 비서가 최대 “적국”인 한국으로 망명한 것은 북한 정권에 유례없는 타격을 주었다. 북한이 오늘까지도 신처럼 추앙하는 그 “주체사상”의 창시자가 한국으로 왔으니 김정일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였다. 황비서의 가족과 친척, 친우들, 선후배들 무려 2천여 명의 인재들이 사형장의, 정치범 수용소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황선생의 탈북 후 북한 지도부는 북한 엘리트 계층의 대량적인 체제 이탈을 방지하기 위하여 한국정부가 황 선생을 박대하였다고 선전하였다 그러나 황선생은 한국에 계시는 동안 주택, 승용차, 경호차, 생활비 등에서 장관급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 돌아가신 후에는 최상급의 대우를 받았다. 한국정부는 황선생이 서거하자 그분에게 1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고 국가 원수나 국가 유공자들이 서거 후 안장되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최대의 예우를 갖추어 모셨다.
물론 황선생이 편안한 생활만을 누리다가 하늘로 가신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피붙이들과 그리고 가깝게 지냈던 수천 명을 잃은 것보다 황 비서를 더 좌절하게 만들었던 여러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싸웠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남한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더 나아가 북한에 대한 환상을 바로잡기 위한 투쟁이었다. 황 선생이 아무리 북한의 수령 독재의 비참한 현실과 북한 주민들의 노예와 같은 생활을 이야기하여도 적지 않은 남한 사람들의 귀에는 그것이 남의 나라 애기처럼 들린 것이다. 황 선생은 이런 현실에 굴하지 않으셨다. 황선생은 김부자 독재체제의 속성을 남한 국민들에게 똑바로 알려주고 대북전략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북한 인민들을 수령 독재에서 어떻게 해방하고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역설하였다.
황선생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도 조국의 통일과 통일후 남북의 화학적 화합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보배들이며, 힘을 키우고 하나의 대오로 단합하면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늘 강조하였다. 현재 동토의 땅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수가 2만 3천여 명을 넘는다. 그리고 그 숫자는 빠르게 증가하여 올해 말 전에 3만여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북한 사회를 경험하고 죽음을 불사하며 한국으로 온 탈북자들이 황선생의 바람대로 하나의 대오로 뭉칠 때 얼마나 큰 힘이 나올 것인가? 탈북자들은 한국사회에 잘 적응하면서 반드시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여야 하며 한국 사람들에게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똑바로 알려주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인의 생명보다 민족의 생명이 더 귀중하다”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수하면서 민족의 통일과 미래만을 생각하신 황선생의 뜻을 기려야 할 것이다.
통일은 분명히 다가오고 있다 새벽이 오기전의 밤하늘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북한의 김정일은 병색이 완연하며 그래서 북한은 3대세습을 서두르고 있다. 북한 국가경제는 이미 붕괴하고 일종의 시장경제인 장마당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 북한사람들의 민심도 김부자 독재정권에서 떠나고 있다. 전쟁을 막고 민족의 통일을 꿈꾸며 서울로 오셨던 황선생의 고귀한 꿈은 조만간 실현될 것이다.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략실장 고영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