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 사나’
건조하기 짝이 없는 세 글자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한국을 떠나 살다 보니 노란 채팅창은 가족이나 동네 절친들의 전용 창구가 됐다. 핸드폰을 지배하는 초록 채팅창을 비집고 나타난 노란 채팅창.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 날짜를 거슬러보니 1년 전이다.
세 글자로 안부를 확인하는 습관은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까지 씹어 먹었다. 이토록 한결같을 수 있을까. 메시지를 보내는 시기도 그렇다. 꼭 내 생일이 두어 달 지난 후에 보내는데 참으로 정성스러운 뒷북이다.
‘잘 사나’는 스무 살 때 만났다.
예쁜데 이상한 아이였다. 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겉모습으로 시를 사랑했다. 평소 수다스럽지 않은 편인데 잘 사나가 살던 기숙사에 놀러 가면 얘기하다 새벽을 맞이하곤 했다. 잘 사나의 가장 파격적인 행보는, 우리 과에서 괴짜로 알아주던 선배와 커플이 되어 나타난 사건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봄은 짧았고 이별은 길었다. 잘 사나와 선배는 학교에서 사라졌다.

우리가 다시 만난 곳은 해남이었다.
그때도 ‘잘 사나’라는 문자 메시지 하나로 나를 땅끝까지 불러냈다. 정말 보고 싶었다. 도망치듯 떠난 너야말로 잘살고 있는지. 오랜만에 만난 잘 사나는 삭발만 안 했지 비구니 같았다. 상처를 해탈해 버린 것 같은 눈빛. 그 눈빛을 마주 보고 앉아 기숙사에서처럼 새벽까지 술잔을 나눴다. 시를 끊었다고 했지만 감성은 들끓는 걸 보고 안도했다. 책장에 저렇게 시집을 쟁여놓고 끊었다는 말이 나오니?
동기 결혼 때 한 번, 내 결혼 때 한 번 만나고 나머지 세월은 건조한 메시지만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시를 전공했다는 애가 세 글자가 뭐냐?”
몇 년을 세 글자로 가스라이팅 하길래 물어봤더니 ‘간지럽지 않은 최선’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이해된다. 너다운 안부 메시지였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줬다. 그러고 보니 또 이해된다. 노란 채팅에는 생일자 프로필에 고깔이 씌워지며 연결된 친구들에게 강제로 일깨워주는 생일 알림 서비스가 있으니, 내 생일이 다가오는지 당일인지 지났는지 모를 수가 없는데. 생일이라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는 간지러웠겠다. 연락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내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겠구나. 보이지도 않는데 까슬까슬 가시 박힌 것처럼 신경 쓰였겠지. 그러다 문득 용기 낸 ‘잘 사나’
나는 사는 게 바빠서 다른 사람 안부 묻는 것에 쩨쩨했다. 낯선 나라를 떠도는 동안 멀어지는 인연들이 많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잘 사나가 1년에 한 번 엉뚱한 날 보내오는 세 글자는 관계를 돌아보라는 알림 같다. 정말 잘 살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라는.
어떤 답장을 할지 한참 고민했다. 시나 쓰면서 살고 싶다던 잘 사나의 프로필 사진은 그만한 이유가 없어 보였다. 어떻게 지내냐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때의 너를 떠올리며 너의 안부를 묻기로 한다. 선배들이 후배들의 이름을 쉽게 외우기 위해 본가의 명칭을 따서 하사한 이름으로.
시 쓰는 진돗개야. 나야, 소설 쓰는 점잖이. 너도 잘 사나.
고운배(tj_jeong030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