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에서 딸과 헤어지며 돌아서는 남편의 얼굴에는 쉽게 숨길 수 없는 슬픔이 어려 있다. 조금 전까지 꿀이 떨어질 듯 바라보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하고, 딸과 이야기할 때만 나오던 다정한 목소리도 깊게 가라앉는다. 그 순간 나는 남편의 시선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의 온기를 본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좀처럼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말수가 적었고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렀다. 기쁜 일이 있어도 크게 웃지 않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그저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어른이란 원래 감정을 숨기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믿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 해, 할머니는 외아들인 아버지 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는 찾아오는 이들의 위로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검은 양복 아래 축 처진 어깨에는 울음을 삼킨 슬픔과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함께 내려앉아 있었다. 장례를 마친 뒤,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버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만 운다고 하던데, 저는 오늘 그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아버지는 꺼이꺼이 목놓아 우셨다. 오랫동안 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순간에 터져 나온 듯한 울음이었다. 나는 뒤에서 숨을 죽인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은 장면이 되었다.
아버지는 무뚝뚝했지만 딸에게만큼은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말없이 집 밖을 서성이며 기다리셨고, 겨울 밤에는 이불을 미리 덥혀 두셨다. 걱정과 사랑을 말로 건네기보다는 늘 행동으로 보여 주는 사람이었다. 그 조용한 배려들이 켜켜이 쌓여 나를 지켜 주고 있었다.
내 결혼식 날, 아버지는 마이크를 잡고 한참을 말없이 서 계셨다. 붉어진 눈가와 미세하게 떨리던 손을 보며 나는 그 침묵이 눈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짧은 말만 남기고 내려오던 뒷모습이 그날따라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잘 울지 않았다. 나이가 들며 귀는 어두워지고 목소리는 커졌지만, 감정은 여전히 말 대신 침묵 속에 머물렀다. 그러다 올해, 손녀를 대학에 보내고 영상통화를 하던 날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어요.”
그 한마디에 화면 속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고개를 끄덕이던 그 얼굴에는 세월 동안 쌓아 온 사랑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표현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버지는 평생의 침묵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지금도 말이 많지 않다. 여전히 잘 울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의 하루하루는 말없는 온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안다. 표현이 서툴러도, 말이 없어도 아버지라는 이름의 온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삶을 조용히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남편 역시 그런 아버지가 될 것이다. 조용히, 묵묵히, 삶의 전부로 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상하이 린(1660323640@qq.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