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pop이 전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는 사이, 중국에서는 또 다른 흐름이 자라나고 있다. 팬 투표로 데뷔가 결정되고, 굿즈 소비가 경제를 이끄는 ‘아이돌 산업’이 이제는 중국에서도 하나의 문화 체계로 자리 잡았다. ‘우상연습생’, ‘창조101’, ‘청춘유니’ 등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단순한 연예인이 아닌, 팬덤이 만들어낸 문화적 주체로 성장했다. 여기에 SM엔터테인먼트와 이수만 등 한국 제작자의 본격 진출까지 더해지며, C-pop은 더 이상 K-pop의 그림자가 아닌, 독자적 흐름을 가진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판 아이돌의 시초는?
2000년대 초중반, 중국에서도 아이돌 유사 그룹들이 활동했다. 타이완의 ‘S.H.E(2001)’는 중화권 걸그룹 붐을 일으켰고, ‘지상려합(至上励合)(2007)’은 JYP 자회사 도레미 미디어(DoReMi Media)와 EE미디어의 합작으로 탄생한 중한 합작형 보이그룹이었다. 이어 2010년에는 ‘MIC 남단(MIC男团)’이 등장해 한국식 퍼포먼스를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 이들 그룹은 ‘아이돌’보다는 보컬 댄스 그룹으로 불리며, 정형화된 팬덤 산업 없이 연예계의 일부 장르로만 소비됐다.
이 흐름을 본격적으로 뒤바꾼 것이 2013년 데뷔한 ‘TFBOYS’였다. 10대 멤버로 구성된 이 보이그룹은 청량한 이미지와 성장 서사를 전면에 내세웠고, 이를 통해 중국 청소년 팬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들은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이상적인 청년상’의 상징으로 국가적 지위를 획득했다.
‘TFBOYS’는 한국으로 치면 ‘HOT’나 ‘SES’ 같은 느낌으로, 아이돌이란 말이 없던 시대에 대중이 아이돌로 느낀 최초의 그룹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TFBOYS’ 조차도 아이돌 산업 시스템의 일부는 아니었다. 이들은 사전 캐스팅, 폐쇄형 트레이닝, 기획사 주도의 데뷔를 거쳤고, 팬덤은 응원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소비 구조에 머물렀다. 즉, 팬들이 직접 연습생을 고르고 데뷔를 결정하며, 굿즈 구매나 광고 유치 등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사진= 중국 아이돌 시초 ‘S.H.E’]

[사진=2007년 중한 합작형 보이 그룸 ‘지상려합’]

[사진=2013년 데뷔한 ‘TFBOYS’]
이런 맥락에서, 2018년 중국은 두 개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 산업의 체계화를 시작했다. 아이치이(iQIYI)의 ‘우상연습생(偶像练习生)’은 100인의 남성 연습생 중 시청자 투표로 ‘나인 퍼센트(NINE PERCENT)’를 탄생시켰으며, 텐센트비디오(腾讯视频)의 ‘창조 101(创造101)’은 여성 버전으로 ‘로켓걸스 101’을 배출했다. 이후 ‘창조영’ 시리즈는 2019년부터 다국적 멤버 구성으로 확장되며 INTO1 같은 혼성 국제 아이돌 그룹을 선보였다. 이들 시리즈는 모두 한국의 Mnet ‘프로듀스101’ 포맷을 참고했으나, 플랫폼·방송사·기획 구조는 상이했다.
중국 아이돌 산업의 확장과 대표 그룹 등장!

[사진= NINE PERCENT]
특히 2018년은 중국 아이돌 산업에 본격적인 산업화 흐름이 시작된 해이다. iQIYI의 우상연습생은 시청자 실시간 투표로 최종 데뷔 멤버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K‑pop의 ‘프로듀스 101’ 구조를 모방한 중국판 서바이벌 룩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은 총 180만 명 이상의 온라인 참가자 투표와 13억 뷰 이상의 화제성을 기록했으며, 최종 선발된 ‘NINE PERCENT’는 중국 내 팬덤 경제 모델을 정립한 첫 사례였다.
이 그룹의 데뷔 앨범 To the Nines는 발매 3일 만에 800만 위안 매출, 총 140만 장 이상 판매 기록으로 밀리언셀러가 되었으며, iQIYI VIP 회원 전용 온라인 콘서트의 라이브 스트리밍은 단일 방송 기준으로 4억 개 ‘좋아요’, 최대 120만 동시 시청자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 팬덤의 투표 중심 소비구조와 디지털 참여성을 방증하는 수치다.

[사진= 로켓걸스101]

[사진=THE9]
같은 시기, 텐센트비디오는 여성 버전인 ‘창조 101(创造101)’을 통해 ‘로켓걸스 101(火箭少女101)’을 탄생시켰다. 2018년 6월 11인조 여성 그룹으로 데뷔한 이들은 멤버 멍메이치, 양차오웨, 우쉐한 등을 중심으로 비주얼 중심 광고 노출과 팬덤 결집을 유도했다. 특히 팬들은 ‘50만 위안 이상 투표카드 구매’, ‘조직적 온라인 투표 시스템’, ‘콘텐츠 생산 및 해시태그 확산’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최종 투표 수는 13억 건이 넘었으며, 개인 멤버 멍메이치는 무려 1억 8500만 표 이상을 확보하며 리더로 선출됐다.
중국 아이돌 여론에서는 “멤버 간 실력 격차”, “양차오웨 중심의 팬덤 편중”, “비즈니스 중심의 투표 시스템” 등 논란도 있었지만, 이는 오히려 팬덤 조직화 수준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팬들은 내부 조직화해 ‘투표, 데이터 분석, 댓글 컨트롤, 굿즈 운영’을 담당하는 팬클럽 분업 구조까지 채택했으며, 일부 팬들은 한 주 수익이 1만 5000위안에 달하는 굿즈 제작·판매까지 주도했다는 보도도 있다.
2020년 iQIYI는 ‘청춘유니2(青春有你2)’로 THE9를 탄생시켰다. 리우위신, 위슈신, 쉬자치 등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음악성과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방송 직후 공식 굿즈가 전량 매진되고, 라이브 방송 후원을 포함한 팬 기반 경제가 폭발했다. 멤버 일부는 이후 드라마·광고·MC 등으로 활동 폭을 확대하며 C‑pop 걸그룹의 시장화 확장의 표본이 됐다.

[사진= INTO1]
2021년에는 텐센트 주도로 ‘창조영 2021(创造营2021)’을 통해 INTO1이 결성됐다. 태국, 일본, 미국, 중국 등 11개국 출신 멤버로 구성된 이 혼성 그룹은 QQ뮤직 실시간 차트 상위권에 진입한 데뷔곡 ‘INTO1’을 선보이며 글로벌 팬덤 전략을 수립했다. 팬덤은 언어별 소셜미디어 커뮤니티를 구축하며 숫자 중심의 ‘팬 주도 경제’를 강화했고, 디지털 플랫폼 콘텐츠 확산에 기여했다.
중국형 아이돌 시스템, 팬덤 경제 형성
이러한 프로젝트 그룹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트레이닝, 연습생 공개, 팬 투표 방식, 굿즈 연계 마케팅 등 한국식 제작 시스템을 도입하면서도, 중국 로컬 플랫폼이 주도권을 행사했다. 또 K-pop의 형식을 중국 시장 조건에 맞춰 재구성한 ‘중국형 아이돌 시스템’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K-pop의 단순 모방을 넘어선 산업적 독립성을 보였다.
팬덤 경제 측면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팬들은 굿즈 구매뿐 아니라 온라인 광고, 스트리밍 배틀 참여, 생일 이벤트 광고 운영, 멤버 순위 예측 게임까지 조직적으로 수행했다. 팬덤 중심 활동은 중국 온라인에서 ‘Data 부서’를 통한 바이럴 지표 생성으로 이어졌으며, 일부 팬들은 앨범 발매 전부터 광고 수익 모델에 참여하는 사례도 있었다.
중국 아이돌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2018년 이후, 한국 제작자들의 영향력은 C-pop 산업의 여러 영역에서 관찰되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의 중국 시장 재진입, 그리고 SM을 떠난 이수만의 독립 행보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중국 내 ‘한국식 시스템’을 심는 역할을 해왔다.
SM과 텐센트뮤직의 전략적 협력
올해 5월, SM엔터테인먼트는 중국 최대 음원 플랫폼인 텐센트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전략적 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향후 2~3년 내에 중국 전용 신인 아이돌 그룹을 공동 제작해 데뷔시키겠다고 발표했으며, 캐스팅 및 트레이닝은 SM이, 유통과 플랫폼 운영은 TME가 전담하는 구조다. 이어서 TME는 SM의 지분 9.7%를 확보하며 2대 주주로 등극했고, 이 협업은 단순 프로젝트가 아닌 TME 콘텐츠 생태계에 K-pop식 제작 기법을 도입하려는 장기 전략으로 분석됐다.

[사진=그룹 A2O May(출처: 구글)]
이수만의 독립 행보와 A2O May의 실험
한편, SM에서 물러난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는 별도의 제작사 A2O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독자적으로 중국 진출을 진행 중이다. 그는 2023년부터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오디션을 개최했고, 2025년 1월에는 전원 중국인 멤버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A2O May’를 데뷔시켰다. 이들은 ‘Zalpha pop’이라는 장르명을 내세우며 실험적 세계관과 콘셉트를 강조했고, 한국 트레이너진의 참여 하에 무대 구성, 안무, 팬 소통 방식 등에서 K-pop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A2O May의 데뷔곡 〈BOSS>는 QQ뮤직 핫차트 8위에 올랐고, 미국 Mediabase 라디오 Top40 차트에도 3주 연속 진입하면서 글로벌 시장 확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 그룹은 다국적 구성이 아닌 전원 중국인 멤버로 구성되었으며, 콘텐츠 배포는 QQ뮤직, 도우인(抖音), 샤오홍슈(小红书) 등 중국 플랫폼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행되었다.

[사진=보이즈플래닛2 예고편(출처: 유튜브)]
K-제작진의 오디션 포맷 수출 시도
이와 병행해 CJ ENM 산하 프로그램 ‘보이즈플래닛’2의 일부 제작진은 중국 내 독립 제작사와 협업을 통해 오디션 포맷의 수출 및 공동제작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은 장기 팬덤 운영보다는 숏폼 기반 소비에 특화된 ‘스낵형 아이돌’ 모델을 지향하며, 도우인, 샤오홍슈 등 플랫폼과의 콘텐츠 연계 구조를 우선 설계하고 있다.
‘K 플래닛’과 ‘C 플래닛’ 포맷의 결합과 논란
‘K‑플래닛’과 ‘C‑플래닛’ 형식으로 병행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한국어권과 중화권 참가자들이 각각 독립된 회차로 경쟁하다가 3회차부터 합병되었으며, 최종 데뷔 팀은 단일 구성으로 선발될 예정이었다. 이 포맷은 한국 제작 시스템을 중국화하려는 시도의 대표 모델로 평가됐다.
하지만 한국 참가자들의 사생활 논란과 중국 참가자에 대한 편집과 멘트가 문제가 되면서, 글로벌 팬덤은 구조적 불공정을 본격 제기했다. 특히 중국인 연습생 “한국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멘토의 공개적 야유를 받는 장면이 SNS에서 6.6백만 회 이상 조회되며 논란이 확산됐다. 팬들은 트위터(X)에 “처음에 중국 그룹으로 나올 의도였는데 한국어 부족하다고 몰아세우는 태도는 부당하다”는 비판의 여론도 존재했다.
중국 정부 규제에 맞춘 대응 전략
이같은 한국 제작진의 진출은 중국 내 정치적 규제의 변수를 피할 수 없다. 2021년 9월, 국가광전총국(国家广播电视总局)은 ‘关于加强文娱领域综合治理工作的通知’를 발표하며 다음과 같은 8대 금지 가이드라인을 명문화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전면 중단, ‘娘炮(여성스러운 남성)’ 이미지 금지, 유료 투표 제한, 청소년 팬덤 활동 축소, 연예인 랭킹 폐지, 팬덤 갈등 조장 콘텐츠 규제 등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제작진은 공익 이미지 강화, 청년 성장 서사 부각, 전통 문화와의 접목 등 중국 정부의 문화 기조에 맞춘 사전 기획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중국산 K-pop’을 넘어서: 하이브리드 C-pop의 탄생
결국, 한국 제작자들의 중국 진출은 단순히 트레이닝 시스템이나 무대 구성을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작 전 과정의 현지화 흐름과 맞물리며 새로운 콘텐츠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제작 방향은 ‘중국에서 생산된 K-pop’이라는 한계를 넘어서, 현지 기반의 하이브리드형 C-pop이라는 독자적 모델로 진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K-pop이 더 이상 일방적인 수출 콘텐츠가 아니라, 글로벌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다양한 지역에서 창의적으로 변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향후 동아시아 대중음악 시장이 단일 국적 중심이 아닌 다국적 제작 생태계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며, C-pop 역시 그 주체로 자리매김할 준비를 갖춰가고 있다.
학생기자 전소윤(저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