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이야기가 노래가 될 때’ 조선족 이주사 스크린 콘서트의 울림

[사진=지난 3일 지우팅에서 열린 조선족 이주사 스크린 콘서트]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광주에서 태어난 작곡가 정율성, 최초의 한류스타인 영화배우 김염.
오래도록 ‘우리의 사람들’로 기억돼 온 이름들이다. 동시에 ‘조선족을 빛낸 100인의 인물’을 노래로 엮는 무대가 있다면 반드시 불려야 할 이들기도 하다. 중국에 사는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이 이름들 앞에서 멈칫하게 된다. 그리고 민족과 국적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조선족 동료의 정체성을 가늠해보는 어리석은 시간을 통과한다. 중국 대 한국 축구에서 어느 팀을 응원할지, 전쟁이 나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등 유치한 질문들이 그 과정을 대신한다.

노력하지 않는 정체성이라는 오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받곤 했던 20년 지기 지인을 만났다. 옛 직장 동료들의 안부로 시작한 대화는 한국 정치와 중국 경제, 자녀 교육과 부부이야기, 노후 준비와 앞으로의 거주지 고민으로 이어졌다. 비인간동물의 생명권과 인간의 존엄한 죽음, 행복의 의미까지 자연스럽게 공명할 수 있는 이 친구는 70년대생 조선족이다.
20년 전,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 연길에서 상하이로 이사했고, 나 역시 고속 성장하던 중국으로 이주했다. 이 친구와 국적의 차이를 실감하는 거의 유일한 지점은 아이 이야기가 나올 때다. 엄마 아빠 모두 우리말을 하는 조선족인데 딸아이와는 중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노력하지 않는 정체성’이라고 쉽게 판단한 적이 있다. 지금은 안다. 그것이 중국 주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이었음을.
문화와 역사를 잇겠다는 선언
재작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다. 문학적 성취보다 오래 남은 것은 한 조선족 독자의 말이었다.
“노벨문학상 작품을 번역 없이 우리말로 읽을 수 있어서 더 감동이었어요.”
윤동주의 시를 사랑해온 그들과 한강의 수상을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은, 언어가 국경을 넘어 어떻게 이어져 오는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이러한 언어의 힘과 문화의 무게를 아는 80·90년대생들이 모여 ‘조선족 100년 이주사’를 스크린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냈다. 90분 동안 이어진 무대는 단순한 재현이라기보다 다층적인 증언에 가까웠다. 말과 글, 노래가 이어진 화면 속에는 잊혀가는 문화와 역사를 잇겠다는 조선족 공동체의 의지가 전해졌다. 이 무대를 만든 단체 ‘글밤(글이 숨쉬는 밤에)’의 비장함은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려 했던 영화 <말모이>를 떠올리게 했다. 민족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단지 말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 곧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선택으로 이어진 생존과 결단의 역사
이주사 콘서트가 들려준 조선족의 역사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구한말 두만강을 건너 품고 온 것은 생존이었고, 항일지사들이 이 땅에 뿌리내린 것은 결단이었다. 항일전쟁과 건국의 과정에서 조선족은 이주민이 아니라 이 사회의 주체로 살아왔다.
오철호 상하이조선족문화교육후원회장은 “이 땅에 뿌리를 내렸고 개척했고, 항일전쟁과 건국에 헌신해서 지금의 우리가 있다. 이주민이나 손님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조선족의 역사 인식이 이 한 문장에 응축돼 있다.
이 선택의 역사는 1990년대 이후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아이들을 고향에 남겨둔 채 한국으로 떠난 부모들, 중국 대도시로 터전을 옮긴 젊은이들, 세계 무대로 나아간 경제인들, 모두가 생존을 위한 결정이었다.
자절하며 지켜온 것들
살아남기 위해 잘라내야 했던 것도 분명히 있었다. 언어였다. 중국에서 조선어는 금지되지 않았다. 점점 쓰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공동체 안에서는 일상의 언어였지만, 학교와 직장, 도시로 갈수록 중국어가 생존의 언어가 됐다. 이는 폭력적 강제가 아니라, 너무도 평온한 선택의 결과였다.
“편해서”, “현실이니까”, “그래야 기회가 있으니까.”
조선어는 그렇게 공적 공간에서 한 발씩 물러나 사적인 영역으로 접혀 들어갔다. 학교에서는 성적을 위해, 직장에서는 효율을 위해, 도시에서는 기회를 얻기 위해 중국어를 선택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거대한 비극 대신, 이런 작고 합리적인 선택들이 쌓였고, 그래서 언어가 밀려나는 과정은 쉽게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조선족의 언어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 빼앗기지도 않았다. 다만 생존과 이동의 계산 속에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이 모습은 도마뱀이 위협 앞에서 꼬리를 자르는 ‘자절’을 떠올리게 한다. 꼬리를 버린 것은 패배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러나 꼬리는 몸의 일부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몸에서 떨어져도 무관한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설명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 자절은 국경을 넘어 반복된다.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들은 이번에는 언어를 되찾는 대신, 중국에서 살아온 시간과 억양, 경험을 설명하거나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말은 같았지만, 정체성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교육과 취업, 사회적 이동의 기회를 얻었지만,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온전히 담아내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사진=콘서트를 기획한 ‘글이 숨쉬는 밤에(글밤)’]
다시 잇기 시작한 시간
바로 이러한 한계 지점에서, 이주사 콘서트가 던지는 의미는 더욱 선명해진다. 잘려 나간 언어보다 정체성을 먼저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글밤’ 김수연 대표는 말한다.
“아이들이 우리말이 서툴다면 중국어로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언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가입니다.”
이 콘서트는 그 역사 교육의 방식이었다. 멀고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100년의 시간을 노래와 이야기로 풀어, 젊은 세대가 몸으로 느끼게 했다. “열차는 곧 떠나는데 마음이 조급하다”는 김 대표의 말처럼, 80·90세대가 마지막 증언자가 될지 모른다는 절박함 속에서 이주사 스크린 콘서트는 3년째, 15회차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00세대가 더 이상 일상에서 쓰지 않게 된 언어의 자리를 그냥 비워두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조선족 사회가 지켜내려는 것은 언어 그 자체보다, 언어가 품고 있던 역사와 기억, 그리고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다.
도마뱀은 꼬리를 버리고 살아남은 뒤, 사라진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간다. 조선족의 정체성도 그렇다. 잘라내며 살아온 시간 끝에서, 이제는 다시 잇기 시작한 시간 위에 서 있다. 말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이 없어도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
고수미 기자

[사진= ‘이주사 스크린 콘서트’ 청소년 자원봉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