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뭐 먹지?
끝없는 인생 난제다. 매일 해야 하는 고민이고 심지어 식욕 없는 날에도 가족들 생각하면 해야 하는 고민이다. 그날도 그랬다. 고민을 털어버리려고 냉장고를 뒤적이는데 지인이 반찬을 나눠 먹자며 연락해왔다. 청량한 바람 냄새와 함께 온 그녀는 참기름 둘러 반짝이는 나물들과 온기 남은 메추리알 조림을 꺼냈다. 나는 메추리알만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한동안 잊고 지내다 툭 튀어나왔다. 정말 오랜만의 회상이다.
사회 초년생이었다.
우리 팀에는 사랑받는 막내 두 명이 있었는데 하나는 애교 많은 친구였고, 하나는 나였다. 나는 과묵했다. 전혀 다른 성향의 두 막내는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적응했다. 기름기 없이 팍팍한 회의에서 동치미 한 숟갈 같은 발상이 나의 무기였다면 그 친구는 목소리와 웃음소리만으로 분위기 자체를 바꿔버리는 신묘한 힘을 가졌다. 부러웠다. 서로에게 없는 능력을 파악한 우리는 동맹을 약속했고 종종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특급 막내들로 불렸다.

팀의 평균 연령이 30대 초반이던 시절이다.
야근에 팀 회식까지 해도 누구 하나 지치지 않던. 그날도 저녁 식사 겸 회식하자는 의견이 급 물살을 탔다. 빈 속에 술잔을 연거푸 비운 사람들은 먼저 나온 밑반찬을 빠르게 비워냈다. 메추리알 조림이 있던 그릇이 텅 비었길래 나는 “사장님, 메추리알 더 주세요!” 하고 외쳤다. 채워진 메추리알은 금세 동났다. 두 번째 외쳤다. 그러자 안돼요, 가 돌아왔다.
잘못 들은 줄 알고 돌아봤는데 식당 주인이 내 뒤에 와 있었다. 자꾸 달라고 해서 리필이 안 된다며 내 면전에 퉁명스러움을 범벅했다. 무안해진 나를 대신해 옆에 있던 애교 친구가, “그럼 세 알만 주세요. (찡긋)”
또 분위기가 바뀌었다. 식당 주인은 마법 풀린 인형처럼 다른 얼굴이 되어 메추리알 조림을 가져왔다. 다섯 알쯤 돼 보였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얘기해야 하나라도 더 얻어먹지? 아가씨도 상냥하게 다시 말해봐.”
메추리알을 위한 상냥함이라…… 그 와중에 세 알만 달라던 센스가 부러웠고 알 수 없는 비굴한 감정과 묘한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애교 친구는 본인이 원흉인양 역시 벌개진 얼굴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1타 2홍당무를 남긴 주인은 태연히 사라졌다.
한동안 후폭풍이 이어졌다.
어느 식당을 가든 꼭 나타나서 속을 뒤집는 메추리알 조림. 거무튀튀한 소스 위에서 방정맞게 돌아다니다 식탁 위로 내려올 때마다 미워했다. 반찬 리필이 필요한 상황이면 눈치가 보였다. 이상한 식당의 주인도 종종 마주해야 했다. 회사와 가깝다는 이유로. 특급 막내 콤비의 활약은 나의 팀 이동과 애교 친구의 퇴사로 막을 내렸다. 끝도 없이 멀어졌고 점점 지워졌다.
이젠 세월이 많이 흘렀고 메추리알 따위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어른이 되었는데 오랜만에 강제 소환된 기억은 피할 재간이 없다. 애정과 분노가 동시에 떠오르는 메추리알 그 사람. 잘 살고 있을까. 사실 나한테만 한정된 분노의 반찬이니 애교 친구는 어디서든 앙증맞은 국민 밑반찬처럼 사랑받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그 이상한 식당은 얼마 못 가 폐업했다. 이유는 안 들어도 짐작이 된다. 꼬시다.
고운배(tj_jeong030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