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731’이 한국에서 지난 1월 21일 개봉되었다. 영화 ‘731’의 배경이 되는 731부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관동군 산하에서 운영된 세균전 부대로, 중국 하얼빈 핑팡(平房) 지역을 중심으로 인체 실험과 세균무기 개발, 생체 해부 등을 목적으로 설립한 군부대이자 연구 기관이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와 전쟁 포로들이 수용되었다. 일본군은 이들은 ‘통나무’라는 뜻의 ‘마루타(丸太)’라 부르며 인간을 실험용 소모품으로 취급하며 잔인한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
731부대의 만행들은 오랫동안 중국 현대사의 핵심 전쟁 기억으로 자리해 왔지만, 이 기억이 동아시아 전역에서 동일한 밀도로 공유되어 온 것은 아니다. 이번 영화 ‘731’의 한국 개봉은 그동안 ‘타자의 기억’으로 존재해 온 전쟁 기억의 경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개봉된 <731>
영화 속 조선인 피해자와 기억의 이동

[사진= ‘일본 제731부대의 세균전-기억해야 할 역사, 소중한 평화’ 특별 전시회 한국인이 731부대로 끌려간 증거 확인할 수 있는 특별 이송 증명서와 사진(출처: 중앙일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731은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 동원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시성을 보여 왔다. 이는 범죄의 발생지가 중국이었고 피해자의 다수가 중국인이었다는 인식, 그리고 남아있지 않은 많은 증거자료 때문이었다. 그 결과 731은 한국에서 ‘일본의 또 다른 전쟁 범죄’라기보다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인식되며 주변화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영화 〈731〉의 한국 개봉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중국의 전쟁 피해사가 한국 사회에 소개되었다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확인된 731부대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약 3,000명의 희생자가 존재한다. 그중 확인된 조선인 피해자도 분명 존재한다. 영화 속에서 조선인 피해자가 “나는 이기수” “나는 한성진” “나는 고창률” “나는 김성서”라는 실명 고백은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전하는 자술 형식으로 구성되어 관객의 심장을 파고든다. 특히 희생자 중 故이기수는 사진과 함께 일본 헌병이 보낸 지형서 원본까지 공개된 상태이기에 이것이 다른 나라만의 일이라 할 수 없다.

[사진= 영화 731 한국 메인 예고편 화면 中(출처: 콘텐츠존)]
이렇게 조선인 피해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서사 속에서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관객이 이 역사를 완전히 ‘타자의 역사’로 밀어내기 어렵게 만든다. 스크린 위의 피해자는 국적과 언어가 다른 ‘타국의 인물’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 식민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조선인의 모습과 겹치기 시작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731은 중국에서 벌어진 사건, 주된 피해자가 중국인인 역사로 인식되어 왔지만, 영화가 조선인 피해자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주는 순간, 731은 더 이상 외부의 비극으로만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이 단순히 ‘중국의 피해 역사’가 아니라, 식민지 경험과 연결된, 더 가까운 역사로 다가온다.
기억에서 외교로: 731이 던지는 오늘의 의미

[사진= 한중 정상회담(출처: 뉴시스)]
이 같은 기억의 재구성은 최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언급된 역사 인식 문제와도 연결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양국이 일본 군국주의의 침략에 함께 맞섰던 역사를 언급하며, 역사 왜곡에 반대하고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이 단순한 외교 상대를 넘어, 아픈 역사를 함께 겪은 나라라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메시지였다. 이러한 역사 인식의 문제는 외교적 담론을 넘어, 영화와 같은 문화적 재현 속에서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사진= 731부대의 유적(출처: 신화통신 新华通讯社)]
극 중 “731부대의 비밀은 절대 입 밖에 내선 안 된다”는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의 대사는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태도를 드러내며 관객의 분노를 자아낸다. 실제로 731부대는 1945년 종전 직전 ‘마루타’로 불린 수감자들을 전원 살해했고, 건물을 폭파하며 관련 문서를 소각해 대부분의 증거를 인멸했다. 그런데도 731부대에 대한 일본 정부 차원의 공식적 사과는 현재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진실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과 부정 논란이 반복될 때마다 ‘역사를 바로 보는 일’은 단순한 기록과 증거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는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로 마주할 것인가에 대한 현재의 선택과도 연결된다.

[사진= 상영회에서 발언하는 자오린산(赵林山) 감독(출처: 중국중앙방송망 央广网)]
영화를 연출한 자오린산(赵林山) 감독은 12년에 걸쳐 작품을 준비하며 방대한 사료를 참고해 고증에 힘썼다고 밝혔다. 그는 731부대의 초대 부대장이자 가장 악명 높았던 ‘이시이 시로’의 고향인 지바현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곳에서 ‘이시이 시로’의 친척 혹은 이웃으로 알려진 인물로부터 “맞은 사람은 잊었는데, 때린 사람이 왜 기억해야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가해의 기억이 쉽게 지워지려는 현실을 목격한 뒤, 오히려 그 범죄를 더 널리 알리고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그는 상영회에서 “영화는 역사적 증거가 되고, 극장은 정의의 법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영화 ‘731‘이 단순한 역사의 재현을 넘어,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못한 기억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임을 보여준다.
‘731’의 한국 상영은 전쟁의 기억을 다시 사회의 논의 속으로 환기하는 계기가 된다. 731부대에 의한 피해의 기억은 단지 “피해를 겪었다”는 인식을 넘어, 이러한 비극이 왜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은 처벌의 문제를 넘어, 그러한 일이 가능했던 배경을 돌아보고 재발을 막기 위한 공동의 고민과 실천을 뜻한다. 공동 연구와 교육 교류, 기념 활동 역시 그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
역사적 진실은 시간이 흐른다고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기록과 문화적 재현을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또 어떤 태도로 이어갈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역사를 되새기는 일은 과거에 머무는 행위라기보다, 더 안정된 미래를 위해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묻는 과정에 가깝다.
학생기자 김시윤(저장대 법학과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