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전 한국에 설 쇠러 가면서 ‘두쫀쿠’부터 사 먹어 보리라 마음먹었다. 딱히 기대는 되지 않았지만, 나도 한 번은 먹어봐야 아이들과 말을 섞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제과점마다 품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 달 뒤 상하이로 돌아오기 직전에야 맛을 볼 수 있었다. 늘 오픈런이라 살 수가 없더니 벌써 유행이 끝났는지 진열대에 잔뜩 쌓여 있더라며 딸이 넉넉히 사 온 덕분이다. 연로한 부모님은 ‘두쫀쿠’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 입안에서 바삭하게 씹히는 카다이프와 피스타치오 향이 사라지기도 전에, 두쫀쿠 열풍은 그렇게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나는 그 극적인 한 달 사이에 제자들과 번개 모임을 가졌다. 모든 것이 숨 가쁘게 변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인류가 오랫동안 지식과 경험을 사회적 유산으로 축적해 온 가장 고전적이고 변치 않는 방식인 독서와 글쓰기로 생각을 키우며 성장한 제자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더군다나 AI 등장으로 인해 대학을 나와도 좋은 일자리를 갖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이 시점에 제자들은 어떻게 사회로 나가는 출로를 찾고 있는지도 보고 싶었다.
내가 상하이로 이주한 2007년 무렵 4학년 꼬맹이였던 제자는 한국 최고의 학부에 진학했지만, 전공을 살려 일을 하려면 10년은 걸리겠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공 공부 대신 1년에 100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부생 시절에 이미 창업해서 어지간한 고소득 전문직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었다. 이공계 출신이지만 홍콩의 투자은행에 취업한 제자도 있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해서 스마트팜을 경영하는 제자도 있었다. 새신랑이 된 제자는 기존에 회사에 없던 업무를 제안해서 해외 영업을 뛰고 있었다. 생각보다 창업한 제자들이 많았고, 전공과 다른 길을 걷거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경우가 많았다. 다들 분야는 다르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두쫀쿠’를 제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었지만, 거센 유행의 물결 속에서도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나는 어떤 인간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10초의 미각적 쾌락보다 10년 뒤에도 삶을 지탱해 줄 문장 한 줄을 가슴에 새기는 것. ‘두쫀쿠’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고전을 펼치고 펜을 들어야 하는 이유다.
읽고 이해하고, 질문을 던지고, 다른 시각을 접하고, 다시 생각을 수정하는 일련의 과정은 ‘두쫀쿠’처럼 즉각적인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 ‘지연된 이해의 시간’이 판단력과 성찰할 수 있는 힘을 키운다. 결국 교육이 해야 할 일은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길러주는 일이다.
빠르게 소비하는 사회 속에서 천천히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 경험의 목록이 아닌, 해석의 체계를 갖춘 사람을 길러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의 역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