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건너 루자쭈이의 빌딩들은 끝없이 미래를 향해 솟아오르는데, 강 이편에는 오래전 부두의 공기가 남아 있다. 이미 지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이 같은 바람 속에 머문다. 북 와이탄의 강바람을 맞으면, 오래전 서울의 강가에서 불던 바람이 되살아난다.
그와 보냈던 짧은 시절도 연애라고 할 수 있을까.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만나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다툰 적도 없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내가 무심코 던진 문장을 기억해 두었다가 한참 뒤 가장 알맞은 순간에 꺼내 돌려주었다. 내가 입을 다물어도 어떤 말을 생략하는지 알아챘다. 그 앞에서 나는 자신을 해명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사라졌다. 연락처가 끊긴 것도 아니고, 다른 도시로 떠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가 내 삶의 문장 밖으로 조용히 물러났다. ‘사귀자’라는 말이 없었던 것처럼, ‘헤어지자’라는 말도 없었다. 차라리 내가 싫어졌다거나, 이제 지쳤다거나, 끝을 설명해 주는 단 한 마디라도 있었더라면. 이유를 알지 못하는 상실 앞에서 나는 자주 과거를 되감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느 장면에서 길을 잃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다시 본 건 몇 년 뒤 내 결혼식장이었다. 그는 신부 측 친구들 사이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고, 축하 인사를 건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었다. 마치 바로 전날까지 연락하며 지냈던 사람처럼.
다시 십 년이 흘렀다. 처음 책을 출간하고 무대 위에서 강연을 마친 뒤 사인회를 할 때였다. 줄 맨 앞에 선 사람이 책을 내밀며 웃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손끝이 굳었다. 나는 책장을 펼친 채 가만히 멈춰 있었다.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름 한 글자를 적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농담처럼 말했다. 그렇게 오래 고민하면 뒤 사람들은 언제 다 사인받겠느냐고. 나는 웃었지만, 농담에 대꾸하지는 못했다.
출간 축하 파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방향이 같아 그와 나는 같은 택시를 탔다. 그는 책 이야기를 했다. 내가 쓴 문장뿐 아니라, 끝내 쓰지 못한 마음까지 읽은 얼굴로. 나는 그에게 행복하냐고 물었고, 그는 잠시 창밖을 보다 행복하다고 답했다. 나는 한동안 그가 바라보는 창밖을 함께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의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제 나를 제대로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그리워했던 건 한 남자도, 지나간 연애도 아니었다. 나라는 책을 행간까지 읽어주던 한 명의 독자.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눈빛, 끝내 말하지 못한 문장까지 읽어내던 시선.
자정 무렵 택시에서 내린 뒤 우리는 잠시 함께 걸었다. 겨우 몇백 미터 남짓한 거리였다. 십 년의 시간이 접히며 바로 어제처럼 느껴졌다.k godtk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 번도 어긋난 적 없다는 듯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말보다 말 사이의 공백을 알아듣는 사람과 함께였으니. 강바람이 불고, 불빛이 강물 위에서 천천히 흔들렸다. 그는 내일 또 만날 사람처럼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