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우성 치는 어린 초록 사이를 걷다 보면 ‘살아있음’이 새삼 감사하다. 서울에 오면 지인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와 수다가 참 좋다. 좌충우돌 해외 생활을 함께한 인연으로 중국어, 영어, 한국어를 뒤죽박죽 섞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젊은 시절의 성실함을 그대로 장착한 채 당신들의 ‘화양연화’를 잘 매듭짓고, 그 자양분으로 인생의 후반전을 펼치고 있는 그들이 애틋하고 존경스럽다.
주변에 대충 사는 사람은 없다. 모두 열심히 살아가면서 ‘나,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은퇴하고 백수생활 3년차에 들어서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이정표를 다시 점검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고, 열심히 살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도전이 미덕이었던 젊은 날과 견주어 결코 더 쉽지는 않다.
열심 중독에 걸린 우리는 매일이 보람찬데 미래는 늘 불확실하다. 가장 확실한 미래-‘죽음’은 생각해볼 겨를이 없고, 알면서도 외면한다. 그림 속에서 가끔 죽음과 조우한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등장하는 해골은 삶의 덧없음과 세속적 부의 무의미함을 상기시키고,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켜켜이 쌓인 색과 빛의 공허함 앞에서 많은 이들이 죽음에 대한 초월과 비통함을 만나고 오열하기도 한다.

[사진= 서울 국립현대 미술관(MMCA) 데미안 허스트 전시]
‘죽음’이라는 소재를 예술 상품으로 극대화시킨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의 전시가 서울 국립현대 미술관(MMCA)에서 열리고 있다. 영국의 청년 예술가 데미안 허스트와 자금력과 홍보력이 풍부했던 찰스 사치(Charles Saachi,1943~)와의 전략적인 공생관계는 ‘죽음’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예술로 상품화시키는데 시너지를 발휘했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 2007]
인간의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그 위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두개골을 장식하고, 18세기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해골의 치아를 그대로 작품에 사용했다 하니, “세상에(For the love of God)”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끝없는 인간의 욕망과 삶의 무상함에 대한 성찰이라는 작품 해설이 데미안과 찰스 사치의 욕망의 정점으로 읽히는 것은 나만의 착시가 아닐 것이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상어의 사체를 포름알데히드 용액 수조에 담가놓은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의도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멸에 대한 욕망을 느끼기 보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는 상어의 강제된 부자유함이 안쓰러웠다.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 Contemplating the Infinite Power and the Glory of God, 2008]
유리장 속에 잘린 소머리와 파리 유충을 넣고, 부화한 파리들이 먹이를 찾아 움직일 때, 살충기에 걸려 죽도록 설치해 놓은 작품은 죽음과 생명의 순환을 형상화했다는 허울에도 불구하고, 바닥에 까맣게 쌓인 파리의 사체들과 아직도 살아서 유리장 안에서 윙윙대는 파리들의 고달픈 폐쇄공포증이 보기에도 처참하다.
나비 날개를 사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그 신비로운 색들이 처연하다. 아름답고 숭고한 중세 종교가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잔혹한 역설을 상징하고 있다는 작품 위로 수천 마리의 나비가 날개를 뜯기는 기이한 장면이 오버랩 된다.

[죄인, Sinner,1988]
MMCA는 다이아몬드 해골이나 썩지 않는 상어작품 같은 고가의 작품들을 안전하게 전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감정을 소비할 관람객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용기 있게 대면하기 위해서 다른 생명체에게 얼마나 더 잔인한 짓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타를 뒤로한 채, 전시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5월의 햇살과 바람을 가르며 경복궁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삶도 죽음도 5월의 공기처럼 무해, 무심했으면 좋겠다.
밥 한그릇 안의 우주(yiemisook8@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