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인권 운동가 김영환씨가 지난 3월 29일 중국 다롄에서 중국 국가안전부 요원들에게 체포돼 구금된 지 114일 만인 20일 강제 추방형식으로 풀려나 귀국했다. 김씨는 입국하면서 “북한 주민은 참혹한 인권 침해와 잔혹한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씨가 왜 체포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중국은 김씨 석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에 “한국 탈북지원 단체들의 활동을 막아 달라”고 요구했다. 중국은 그동안 탈북 지원활동에 대해 ‘밀출입국 방조죄’를 적용해 왔지만 김영환씨에 대해선 국가분열 선동, 간첩행위 등 반국가 활동을 처벌하는 ‘국가안전 위해죄(危害罪)’를 씌웠다. 최고 형량이 무기징역이다.
김씨는 1980년대 주사파(主思派)의 논리를 대학가에 퍼뜨린 ‘강철서신’의 작성자다. 주사파 제1의 이론가였다. 김씨는 1991년 북한이 보낸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고, 이듬해 지하조직 민혁당을 결성했다. 그러나 김씨가 자기 눈으로 확인한 북한은 인민이 주인인 ‘주체의 나라’가 아니라 인민이 머슴처럼 김일성 일가를 떠받들어야 하는 봉건국가였다. 김씨는 자신이 잘못 받아들였던 주체사상과 북한의 현실이 완전히 어긋나자 사상과 행동의 대전환을 했다. 1997년 민혁당을 자진 해체했고 1999년 “북한 동포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한다”는 사상 전향서를 쓴 뒤 북한 민주화·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김영환씨는 총선 때마다 정당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지만 “북한 민주화운동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거절했다. 김씨가 만들었던 민혁당 경기 남부 위원장이었던 이석기씨는 지난 4월 총선서 진보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됐다. 김일성을 두 차례 면담했던 김영환씨는 북한을 본 순간 “수령론은 완전한 허구이자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지만, 이석기 의원은 지금도 북의 세습체제를 미화(美化)하는 주체사상의 미몽(迷夢)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영환씨가 주도해 만든 북한 민주화운동 조직은 과거 주사파 활동을 했던 한총련 계열 운동권 출신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북한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혼은 80만원, 기혼은 110만원씩 월 활동비를 받을 뿐 생계는 다른 일을 해 얻은 소득으로 해결한다. 대학 시절 주사파에 물들어 북한 정권의 주민 탄압에 동조했다는 죄의식을 이런 희생적 활동을 통해 씻어 나가고 있다. 진짜 진보 운동가들이라면 북의 실상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순간 자신의 잘못된 북한관을 확인하고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