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밤하늘에 휘영청 달이 떴다. 올해는 유난히 유리알처럼 반짝인다. 둥근달 안에 그리운 얼굴이 하나씩 스쳐간다. 세상을 떠난 이들도, 남아있는 이들도 모두 그리움의 대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남동생. 안부를 건네는 것도 낯간지러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며 살아가는 녀석이 어느 날 전화를 했다. 퇴근길에 들린 음식점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밥을 사줬다고 한다. 타향 살이 하는 그들 모습에서 타향 살이 하는 누나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파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아프지 말고 잘 살다 때가 되면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키 186cm에 몸무게 100kg도 넘는 덩치 큰 동생이 울먹이며 하는 고백을 들으니 마음이 울컥했다.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고 걱정하는 가족들 있다고 느끼니 찬바람 불던 마음에 온기가 돈다.


국제결혼을 결심한 23살의 나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원어민 뺨치는 중국어 구사력,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할 비즈니스, 글로벌한 아이들 교육까지. 똑 부러지게 해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늘지 않는 중국어, 연이은 출산과 양육, 감당하기 벅찬 교육비에 부딪혀야 했다. 중국 생활 18년을 돌아보며 고백하자면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살았다. 한인 사회에도 중국 사회에도 끼지 못하고 존재감 없이 겉도는 생활이었다. 중국 땅에 깊게 뿌리박지 못하고 언제든 내 땅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그렇다고 이곳의 생활이 지긋지긋했던 것은 아니다. 올망졸망 아이 둘을 키우며 행복한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늘 고향을 그리워했고 내가 비운 시간만큼 되돌아가 채워 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겉도는 삶이 아닌 가족과 친구의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주체가 되어 살던 그때가 그리웠던 것 같다.


나는 한인들이 많지 않은 지역에 주로 살았다. 그곳에서 알게 된 한국 사람들과 이웃하며 즐겁게 살았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 교육 문제로 하나 둘 떠나버리고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한 집도 남지 않고 모두 떠났을 때 외롭고 슬펐다. 그때 내 모습은 맥 빠진 보릿자루와 같았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주인이 찾으러 오지 않아 마냥 기다리고 있는 처량한 모습. 그러다 문득 실체 없는 기다림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음을 깨닫고, 내 발로 바깥세상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용기 내 손을 뻗으니 하나 둘 문이 열렸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열리는 다양한 강연과 모임에 참석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되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구석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보릿자루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사실 사람들을 관찰하고 경청하며 마음속에 새로운 씨앗을 심고 있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후, 변화가 시작되었다. 고립은 스스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라 규정하며 시작된 것이다. 보릿자루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빛을 잃었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구체적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허스토리>와의 만남도 이어졌다. 소재가 빈약한데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써 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 수십 개의 두려움이 꼬리를 물며 가로막았지만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글이 어느덧 마지막 편이 되었다. 쓸 수 있어 기뻤고 나눌 수 있어 행복했다. 타향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교민들을 보름달처럼 감싸 안아주는 상하이저널에 깊이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