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를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아무래도 타국 생활을 하다 보니 살고 있는 곳에 깊은 정을 쌓을 새도 없이 이런 저런 이유로 몇 년에 한번씩 동네를 옮겨 가며 살고 있다. 워낙 ‘익숙해짐은 곧 지루함’이라는 생각도 있고 지루함을 싫어 하다 보니 이사를 통한 생활 환경의 변화가 싫지는 않았는데, 몇 년 전인가 이사하고 짐 정리하면서 몸살을 심하게 앓고 난 후에는 ‘이사’ 하면 조건 반사처럼 ‘혹시나 몸살이…’ 하는 걱정이 불현듯 먼저 생긴다.
어쨌든 또 한번 몸을 움직여야 할 때가 왔고, 이사를 어떻게 좀 가벼이 수월하게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 동안 이사를 할 때마다 늘 정말 많이 버렸었다고 생각했다. 옷장이 미어 터지는 데도 당장 입고 나갈 옷이 없는 반복되는 아이러니 앞에서 아끼기만 하고 입지는 않았던 옷들을 과감히 정리했고, 그 당시에는 마땅히 사야 할 이유와 명분이 있었으나 읽지 않고 모셔 두기만 했던 많은 책들도 눈물을 머금고 이별을 했었다.
그 당시에는 ‘힙’했을 이런 저런 색깔의 접시들, 사야 할 이유가 또렷이 보였던 여러 모양의 유리컵들도 더이상 받아 줄 공간이 없을 듯하여 모두 지인들에게 나눔을 했고, 정말 이제는 더 이상 버릴 것이 없고 모두 다 ‘꼭 필요한 것들’만 추렸다고 생각 했었다.
치워도 치워도 쌓이는 것 같은 이 짐들을 어째야 하나,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물건들을 버리고 정리해야 하나 홀로 좌충우돌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일본 작가 곤도마리에가 펴낸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만났다. 인생을 빛낼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마법같은 정리는 한 수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책을 샀었다.
-정리의 시작은 버리기다.
-사진은 마지막 단계에 한꺼번에 정리하라.
-모든 물건에 제 위치를 정하라.
-제 역할이 끝난 물건은 과감히 버려라.
-수납을 잘할수록 물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치원 시절부터 정리에 빠져 있었다는 곤도마리에가 알려 주는 수많은 팁들이 사실은 대단한 비법도 아니고 정리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여기저기에서 적어도 한 두 번씩은 들었을 법한 것들이다. 일부는 경험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들이기도 하다.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가족에게 주지 마라. 버리기 아까운 옷이라고 실내복으로 입지 마라’ 같은 팁들이 한 꼭지를 차지하는 걸 보면 책이 필요했던 수많은 그들이나 나나, 어쩌면 우리 대다수가 별반 다르지 않은 걸 고민하고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곤도마리에의 정리 철학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설레지 않는 물건은 과감히 버려라’ 이다. 정리할 곳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무엇이 나를 아직도 설레게 하는가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할 정도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가 그 하나의 원칙으로 보니, 버려야 할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동안 이렇게 불필요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나 싶기도 하고, 이 짐들을 다 빼면 집이 상당히 넓어지겠구나 싶기도 하다.
그렇게 홀가분하게 이사를 간다 해도 또다시 하루하루 눈에 띄는 무엇들을 집에 들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공간을 채워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어느 때가 되면 ‘나를 설레게 하는 소중한 것’들을 추리고 정리하는 일을 또 반복하게 될 것이다. 살면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있는 한 모으고 다시 정리하는 일은 평생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수다쟁이(kijihe202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