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와이탄미술관(RAM, Rockbund Art Museum)]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상하이의 과거와 미래를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미술관이 있다. 황푸강 서쪽 푸시(浦西)에 위치한 와이탄미술관(RAM, Rockbund Art Museum)과 황푸강 동쪽의 푸동미술관(MAP, Museum of Art Pudong)이다. 푸시의 RAM이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아트 갤러리라면, 푸동 MAP은 기술과 상상력이 빚어낸 초대형 미술관이다. RAM이 옛 건축물의 투박함 속에서 예술을 발견한다면, MAP은 유리와 빛의 투명성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두 미술관을 오가는 것은 단 하루 만에 백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는 것과 같다. 예술이 어떻게 도시의 영혼을 키우는지 목격할 수 있다.
와이탄 미술관, 5월부터 무료 개방
상하이 와이탄미술관(이하 RAM)은 올해 5월 2일부터 무료 개방을 시작했다. 상하이시가 내건 “예술을 일상으로”라는 슬로건처럼, 문화적 기회의 격차를 해소하고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RAM은 각 층마다 독특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1층 로비에는 자연광이 비치는 12m 높이의 중앙 홀이 자리해 시선을 사로잡는다. 벽면은 원형 벽돌을 노출시켜 산업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했고, 유리 천장 아래 설치된 현대적 조형물은 과거와 현재의 대비를 극대화한다.
또한 총 5층의 계단식 구조인 RAM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보다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내부 벽면에 그려진 작품과,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두기를 권한다. 상하이 옛 도시 건물들과 뒷골목 풍경이 액자 속 작품처럼 창문에 걸려 있다.







[사진=액자 속 작품처럼 창문에 걸린 상하이 옛 도시 건물과 뒷골목 풍경]
입구부터 시선을 끄는 벽면의 에멀전 페인팅은 스위스 클라우디아 콤테의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옆도 없었다(There Was No Up, There Was No Down, There Was No Side To Side, 2024)>으로, 서쪽 계단 전체 5개 층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는 대형 설치 작업이다. 그녀는 자연이 지닌 언어적, 생태적, 음악적, 시각적 패턴들을 주제로 삼아 현장 반응형 설치 작업을 이어온 작가다.



[스위스 클라우디아 콤테의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옆도 없었다(There Was No Up, There Was No Down, There Was No Side To Side, 2024)> 에멀전 페인팅]
벽면 페인팅 중 독일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헤켈의 해파리 도감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블룸(blooms)’이 시선을 끈다. 과거 RAM이 중국 최초의 자연사 박물관 중 하나였던 것에 주목해, 벽화 작업을 통해 자연에 내재된 수학적 진리와 해양 생물의 형태적·역사적 기억을 시각적으로 되살렸다. 관람객은 이 복잡하고 매혹적인 해양 패턴 속으로 빠져들며, 자연의 원리와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 전시는 자연과 과학, 예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현대적인 방식으로 해석해낸 것으로, RAM의 공간과 과거, 그리고 관람자의 감각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몰입형 예술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사진=19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생물학자 헤켈이 21세기 상하이에 꽃피운 예술 ‘blooms’]
시대를 관통하는 RAM 변천사
RAM은 난징루에서 황푸강으로 향하는 보행거리를 걷다가 50여 미터 옆으로 새면 만날 수 있다. RAM의 주력 작품은 설치미술이다. 건물 층고가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RAM의 뿌리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4년, 영국 선교사들이 설립한 왕립 아시아문회(Royal Asiatic Society, 亚洲文会大楼)는 동서문화 교류의 중심지로 학술 연구와 출판 활동을 주도했다. 1932년, 영국 건축가 조지 윌슨(George Wilson)이 이 문회를 위한 건축물을 완공하면서 본격적인 문화 허브로 도약했다. 1933년부터 1952년까지 아시아문회로 사용됐으며, 문혁 기간에는 압수된 책들의 저장소로 용도가 변경되기도 했다.

[사진=건축 과정 중 아시아 문회 빌딩(亚洲文会大楼), 꼭대기의 “R. A.S”는 ‘Royal Asiatic Society’의 약자]
또한 아시아문회는 상하이 지식인들의 심장이었다. 중국 최초의 현대적 자연사 박물관에는 1만 점이 넘는 희귀 동식물 표본이 전시됐다. 도서관에는 1.4만 권의 희귀 서적이 소장됐으며, 연구실과 학회 사무실에서 동서양 학자들의 협업을 촉진했다. 이 건물은 단순한 문화 공간을 넘어, 제국주의 시대의 복잡한 정체성을 반영하는 상징이었던 것.
이후 상하이 시정부의 문화 복원 정책 덕분에 재조명을 받게 되면서 2007년 영국의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에 의해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시작해 2010년 현대 미술관 RAM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두 거장의 건축 대화: 조지 윌슨 vs. 데이비드 치퍼필드
조지 윌슨은 1930년대 상하이의 국제적 정체성을 건축에 투영한 선구자였다. 그는 서양의 장식예술과 중국 전통 미학을 절묘하게 혼합했다. 건물 입구의 팔괘 문양이 새겨진 철제 창문, 지붕의 중국식 석조 장식, 내부 계단의 유럽식 세부 조각 등에서 문화적 절충주의를 읽을 수 있다.
반면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21세기의 리모델링에서 “과거를 덧입히는 현대성”을 추구했다. 그는 기존 구조를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유리와 철골을 활용해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조했다. 특히 지하 1층에 추가한 미디어 아트 전용관은 자연 채광과 인공 조명의 조화로 관람객에게 몰입감을 선사한다. 치퍼필드는 2023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RAM의 국제적 위상도 동시에 높아졌다.
이처럼 RAM은 건축, 예술, 역사가 삼위일체를 이룬 특별한 장소다. 이곳을 찾는다면, 조용히 벽에 기대어 건물의 숨소리를 들어보자. 100년 전 학자들의 열띤 토론과 오늘날 예술가들의 에너지가 공명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청년작가 3인전]
“누라 NULA 努拉”
•이레나 하이두크(Irena Haiduk)
•2025.5.2~2026.2.8









세르비아(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자란 아티스트 이레나 하이두크(1982년생)의 전시 <누라>는 단순한 작품 전시가 아니다. 그녀는 RAM 로비와 2층 전시장을 실제 영화 촬영 세트로 전환시키며, 관람객 모두를 영화의 등장인물로 초대했다. 전시 기간 동안 그녀의 장편 데뷔 영화 <누라>의 촬영이 전시장 내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전례 없는 방식의 프로젝트다.
영화는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를 배경으로 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50년간 유지되던 질서가 붕괴되고, 내전과 국제 제재가 초래한 극단적 가치 붕괴의 시대를 다룬다. 이 이야기에는 작가 자신의 삶과 기억이 반영되어 있다. 무너지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욕망, 생존, 변형의 서사를 날카롭게 조명한다.
“돌아오지 못한 자들의 영등”
Lanterns from the Unreturned
•시시 우(Cici Wu, 武雨濛)
•2025.5.2~2029.9.28






베이징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성장해 현재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시시 우(1989년생)의 이번 전시는 작가의 지난 10여 년간 주요 작품들을 한데 모으는 한편, 전시 제목과 동일한 대규모 신작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종이로 만든 수공예 등불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이는 기억과 소멸, 귀환의 주제를 은은하게 반사하는 조형 언어로 기능한다.
시시 우의 작업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자 실험적 미디어 이론가였던 차학경(테레사 학경 차, 1951–1982)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 특히 디아스포라적 의식과 단절된 시간성, 그리고 기억의 윤리성을 탐구하는 방식에서 차와의 정신적 계보가 드러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025년 신작 설치 작업인 이다. 등불을 책의 형태로 재구성하고, 희귀본 복원에 사용되는 전통적 보존용 종이와 대나무로 직접 제작해 창문과 내부 공간에 배치했다. RAM 건물은 1970년대에는 문화대혁명 시기 몰수된 서적을 보관하는 창고로 전용됐다. 시시 우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억과 역사가 지워지고 다시 쓰이고 있는 오늘날, 해답 없는 기억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틈은 빛으로 형상화된다”
A Crack in the Shape of Light Getting In”
•애쉬 모니즈(Ash Moniz)
•2025.5.2~2026.2.8








예술가이자 활동가이며 뮤지션인 애쉬 모니즈(1992년생)는 노동자들이 셧다운 과정에서 되찾은 손실 시간이 어떻게 국제적인 단결의 도구가 되었는지를 공개하고, 노동·저항·침묵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고찰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지난 10년간 글로벌 공급망의 폭력성과 그 안에 숨겨진 노동에 대한 조사를 이어왔다. 잃어버린 시간의 재현 방식이 노동 관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노동자들의 저항을 위한 도구로 어떻게 전환될 수 있는지를 탐구해왔다.
이번 개인전은 이러한 그의 10년간의 실천을 집대성한 전시로, 공급망의 보이지 않는 틈과 부재들, 기록되지 않은 노동, 비효율성, 물류 시스템의 균열을 중심에 놓는다. 그리고 이 숨겨진 공백들이 새로운 연대와 상상력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제안한다.

•입장료: 무료
•上海市黄浦区虎丘路20号
•개방시간: 화~일, 11:00~19:00
글·사진 고수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