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방학은 우리에게 여유와 휴식의 시간을 제공한다. 이 휴식의 시간은 종종 우리가 바쁘게 지내느라 간과했던 사회적, 역사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상하이사범대학교에 위치한 중국‘위안부’역사박물관은 평소 쉽게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존엄성’을 깊이 성찰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이번 방학에는 이곳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그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은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이러한 기본권이 철저히 무시된 아픈 순간들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상하이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처참하게 짓밟힌 비극이 있었기에,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내는 것은 더욱 절실한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되짚어본다.

[사진=상하이‘위안부’역사박물관 입구 전경]
유물과 기록으로 만나는 ‘위안부’ 역사
중국‘위안부’역사박물관은 2016년에 설립되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따옴표가 붙은 ‘위안부’라는 명칭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 명칭은 본래 일본군이 사용한 표현으로, 피해자들의 현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 ‘위안’을 붙여 당시 일본의 교묘한 속임수를 비판하는 의미에서 따옴표를 붙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피해자들의 기억과 역사를 보존하고 연구하며 사회적 인식을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된 피해자들의 개인 소장품과 다양한 문서 자료, 생생한 증언록은 당시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생동감 있게 전달하며 관람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특히 피해 여성들이 실제 사용했던 신발과 옷가지, 위안소의 운영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콘돔과 같은 유물들은 전쟁 중의 참상과 일본군의 조직적인 운영 실태를 명백히 보여준다.
[사진= ‘돌격1호’가 적힌 콘돔]
역사의 현장에서 듣는 그들의 이야기
중국 ‘위안부’ 역사박물관에 발을 들이면 상하이에 이 박물관이 세워진 필연적인 이유를 곧 깨닫게 된다. 상하이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의 중심적 공간으로, 최초의 일본군 위안소인 다이이치(大一) 위안소가 바로 이곳 홍커우 지역에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그 자리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장식에 새겨 놓은 후지산 문양만 남아 과거의 비극을 조용히 전하고 있다.

[사진= ‘대일’위안소 안내 패널]
일본군 위안소의 형성은 1932년 상하이에서 처음 시작되어, 1934년 만주지역에 확대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운영 체계가 갖추어졌다. 특히 1937년 난징 대학살 이후 일본군이 점령지를 넓혀가면서 상하이에만 무려 180여 개의 위안소가 생겼고, 수많은 여성들이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피해를 입게 되었다.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이 가난한 농가 출신의 16~17세 어린 소녀들이었다. 이들은 취업사기나 폭력적인 납치 등으로 연행되어 일본군 위안소에 수용되었고, 군의 엄격한 통제하에 관리되었다. 일부 피해 여성들은 위안부로의 생활 이후 간호원이나 잡부 등으로 강제로 전환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위안소는 인간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구조적 폭력의 현장이었다.
증언, 침묵을 깨고 세상을 바꾸다
사회적 편견과 낙인으로 인해 위안부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 고통스러운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김학순 할머니는 용기 있게 이 침묵을 깨고 자신의 피해 경험을 최초로 세상에 공개 증언했다. 김학순 할머니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약 4개월간의 고통스러운 생활 끝에 탈출하였고,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지에 정착해 전당포를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꾸려 나갔다.

[사진= 피해자들의 증언 녹취 공증서와 증언집]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은 일본군의 잔혹한 만행을 국제사회에 폭로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시아 각국의 피해 여성들에게도 큰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피해자들은 연대하여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하였고, 이러한 연대는 전 세계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비인간성과 잔학성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한 피해자들의 증언은 1993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책임 인정을 담은 ‘고노 담화’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발걸음이 되었다. 결국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한 날인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지정되었으며, 2017년부터 국가기념일로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역사를 기억하는 연구자, 쑤즈량(苏智良) 교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끈질긴 헌신이 필요하다. 상하이사범대학교 중국‘위안부’역사박물관의 전시와 연구를 이끄는 쑤즈량 교수는 이러한 헌신을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수십 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며 관련 자료를 치밀하게 수집해 왔다. 이를 통해 중국 최초의 ‘위안부’ 전문 연구서인 『‘위안부’ 연구(“慰安妇”研究, 1999)』를 저술하는 등, 25년에 걸친 현지 조사와 연구를 통해 이 분야의 권위자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위안부’ 관련 연구서]
그러나 박물관의 마지막 전시실에 들어서면서 나는 쑤즈량 교수를 단지 학자가 아니라, 진정한 인권운동가로 바라보게 되었다. 전시실은 언뜻 보기에는 창고처럼 무질서한 공간으로 보였다. 뜯어진 문짝, 창문 장식, 낡은 주춧돌 등 얼핏 가치 없게 보이는 잡동사니들이 무수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상하이의 도시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위안소의 흔적을 지키고자 하나하나 어렵게 수집한 박물관의 귀중한 일급 유물들이었다.

[사진=위안소 재현 공간]
그 유물들을 바라보며, 위안부 역사의 증거가 사라지지 않도록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품을 팔았을 쑤즈량 교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유물을 수습하며 느꼈을 그의 안타까움과 절박함이 전해져 왔다. 그러한 마음에 나 역시 깊은 감동과 함께 진심 어린 존경을 느꼈다.
박물관을 나서며
이 박물관은 피해자들의 아픈 이야기를 단순히 전시하고 전달하는 것을 넘어, 진정한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내는 공간이다. 한국과 중국의 소녀가 나란히 앉은 소녀상 앞에 서면, 긴 슬픔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환생을 꿈꾸는 나비의 긴 그림자와 피해자들의 실제 발자국이, 역사적 고통의 반복을 막으려는 간절한 염원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사진=한중소녀상]
역사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시작이라고들 한다. 더구나 교학상장의 정신을 실천하는 사범대학교 캠퍼스에 자리 잡은 이 소녀상은 역사적 교훈을 전달하는 역할을 더욱 강력하게 한다.
끝으로 박물관 안내를 맡아준 상하이사범대학교 임혜빈 교수님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임교수님은 쑤즈량 교수의 연구를 물심양면 지원하며 한중연대에 가교 역할을해 오셨다. 특히 소녀상 철거가 언젠가는 상하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라며, 이를 대비하는 교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박물관이 단지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역사쓰기와 맛닿아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쓰러져가는 기억과 역사를 부여잡으려는 연구자들의 노력에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이 글이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올 8.14일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역사를 알리고 기억하게 하는 또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본다.
•주소: 上海市桂林路100号, 上海师范大学东校区文苑楼(2층)
•시간: 화요일-일요일 9:00-16:00 (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단체 방문 시 사전 예약 필수 (zgwafyjzx@163.com)
매년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날로, 2017년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지난 5월 이옥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현재 전국에 생존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6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