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구 선생의 자싱 피난처 메이완가 76호]
이번 여름, 가족과 함께 중국 저장성의 도시 자싱(嘉兴)을 방문했다. 고요한 수로 도시의 좁은 골목길 양쪽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상점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비에 젖은 기와지붕은 더욱 운치를 더했다. 이곳에서 가장 가슴에 남는 장소는 바로 ‘김구 피난처(浙江省嘉兴市梅湾街76号)’였다. 입장료는 무료다.
좁은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가장 먼저 전시관이 보인다. 전시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과 함께 중국이 그러한 독립운동을 어떻게 지원했는지에 관한 사진과 자료들이 자세히 전시되어 있다.
김구 피난처의 역사

[사진=메이완가 76호 입구]
1932년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 이후, 일본의 탄압은 더욱 심각해졌다. 같은 해 5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관계자들은 일본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싱으로 몸을 옮겼다. 당시 김구 선생에게는 오늘날 약 200억 원에 해당하는 현상금이 걸려 있었다. 이 위험한 시기에 중국의 지도자 추푸청(褚輔成)은 김구 선생을 안전하게 숨겨 주었다. 그가 피신한 곳인 ‘메이완가 76호’는 청나라 말기에 세워진 2층 목조 구조의 집으로, 남호와 가까운 위치 덕분에 긴급 시에는 즉시 배를 탈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비내리는 마당과 작은 방

[사진=피난처 작은 마당]

[사진=김구 선생이 실제 머물던 방]
전시관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작은 마당이 펼쳐진다. 여러 개의 화분이 자리잡고 있었고, 비가 내리던 날이어서 마치 하늘이 직접 식물에 물을 주고 있는 듯한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집 안 깊숙이 들어가면 김구 선생이 실제로 머물던 방이 있다. 그곳에는 침대와 가구, 책상 등 생활 용품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놀라웠던 점은 침대의 크기였다. 겉보기에도 작아 보여 “선생님은 키가 작으셨나?”라는 생각이 스쳐, 숙소로 돌아가는 길 실제로 조사해보니 그의 신장이 무려 180cm를 넘었다고 한다. 그런 작은 침대에 몸을 구겨 누웠을 선생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거대한 짐을 지고, 편히 눕지도 못한 채 잠든 그 밤들은 얼마나 깊고 고단했을까.
숨겨진 도피 통로

[사진=서남호로 연결되는 비밀 통로의 작은 나룻배]
방 한쪽 구석에 있는 나무 바닥은 겉보기엔 평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 칸을 살짝 들어 올리면 곧바로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비밀 통로가 드러난다. 그곳에는 작은 나룻배가 대기하고 있어, 적의 공격이 있을 경우 즉시 서남호를 넘어 도망칠 수 있도록 해 놓은 경로였다. 또한 방 안에는 좁은 창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창은 단순한 통풍구가 아니라, 외부를 살피고 누군가 다가오는 신호를 감지하기 위한 경계용 창문이었다. 작은 틈으로 수없이 세상 모습을 심은 채 불안하고 긴장된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집의 다른 방에서는 임시정부의 인사들이 회의를 했던 공간도 남아 있었다. 낡은 탁자와 의자들이 그 시절의 숨결을 전하고 있었다.
추푸청 전시관
피난처를 떠나 골목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추푸청 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 전시관에는 그의 초상화와 함께 그가 활동했던 시기에 대한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를 보호하였고, 그로 인해 독립운동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켰다. 이름만으로 기억되던 한 인물의 생동감이 이곳에서 진정으로 느껴졌다.
자싱의 하루는 비에 젖어 더욱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작은 침대, 비밀통로 그리고 사진 속 결연한 눈빛이 오래도록 나를 붙잡았다. 그 좁은 공간에서 불편한 잠을 견디며 조국의 내일을 그렸을 김구 선생, 그리고 같은 민족이 아니었음에도 그 곁을 지키며 기꺼이 위험을 나눈 사람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내가 지금 이 길을 걷는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중국에 머물고 있는 지금, 나는 이곳에서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를 살아가고 있다. 80년 전, 그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자유와 존엄이 오늘 내 일상에 당연한 듯 스며 있다. 작고 불편했던 침대, 어둠 속으로 이어지던 비밀 통로, 하루도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던 수많은 시간들이 가슴속에 새겨졌다. 이제 나의 길 위에서 그들의 용기와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지금 내가 당연시 누리는 자유를 감사히 여기며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비 내리던 자싱의 좁은 골목을 돌아섰다.
학생기자 김지수(상해한국학교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