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출근합니다, 회사는 없지만”
‘가짜’ 사무실이 진짜 위로가 되는 시대
중국의 20~30대 청년들 사이에서 지금 가장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 바로 ‘假装上班公司(출근하는 척 회사, 이하 ‘가짜 출근 회사’)’다. 직장도, 상사도, 급여도 없지만 이들은 매일 아침 가방을 메고 사무실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짜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열심히 하루를 살아낸다.

[사진=가짜 사무실 모습(출처: 샤오홍슈)]
이 같은 현상은 단순한 ‘공유 오피스’의 확장판이 아니다. 실제로 이용자들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루틴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구조화된 하루(Structured Day)’의 필요성과 연결한다. 직장이 없는 상태에서 하루를 집에서 보내다 보면 자기 관리가 무너지고, 무기력과 우울이 심화될 수 있다. ‘가짜 출근 회사’는 그런 함정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심리적 장치이자, 최소한의 사회적 연결망을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9시부터 5시까지, 똑같이 일합니다. 월급만 없어요”
베이징(北京) 대흥구(大兴区) 한 ‘출근척 회사’는 약 300㎡ 규모의 공간에 30여 개의 책상과 회의실, 휴게 공간, 심지어는 소규모 라이브 방송용 스튜디오까지 갖추고 있다. 하루 이용료는 보통30위안(약 5,800원)이며, 주간과 월간 요금제도 마련돼 있어 실제 직장처럼 정기적으로 다니는 이들도 많다.


[사진=가짜 출근 회사 회장실과 가짜 출근 회사 회의실(출처: 샤오홍슈)]
운영자 주(朱) 씨는 “실업자부터 프리랜서, 창업 준비생까지 다양한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며 “직장은 없지만 매일 아침 어딘가에 출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루틴을 제공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곳은 단순히 책상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라, 청년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작은 직장 대체재’”라며 최근 몇 달 사이 이용자가 급격히 늘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부 공간은 아침 9시 이전부터 만석이 되어 ‘자리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백수처럼 보이기 싫어, 나는 오늘도 출근한다”
가짜 출근 회사는 단순한 공유 오피스와는 결이 다르다. 정해진 업무는 없지만, 이용자들은 대부분 뭔가에 몰두하고 있다. 디자인 작업을 하는 프리랜서, 영상 편집자, 시험 준비생, 혹은 구직 중인 사람들이다.

[사진=가짜 회사 프리랜서 업무 모습(출처: 샤오홍슈)]
27세 샤오푸(小傅) 씨는 “집은 집중이 안 되고, 카페는 너무 시끄럽다”며 “이곳은 분위기 자체가 집중을 유도해서 일의 효율이 올라간다”고 했다. 그는 한 월간지의 외주 편집자로 일하고 있으며, 최근 몇 주간 이곳에서 하루 대부분을 보낸다.
그의 말처럼 가짜 출근 회사(假装上班公司)는 단순히 ‘혼자 앉아 있는 공간’이 아니라, 옆자리 사람들과의 묘한 연대감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실제로 사회학자들은 이를 ‘사회적 동반효과(Social Co-working Effect)’라고 부른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몰두하는 분위기가 ‘함께 일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이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강한 집중력과 자기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
도심 밖 ‘자연형 사무실’도 인기… “농장에서 일해요”
[사진=본然농장 사무실(출처: 바이두)]
베이징 외곽의 ‘本然农场(본然 농장)’은 또 다른 형태의 출근하는 척 회사다. 정식 명칭은 농장이지만, 운영자는 2024년 초부터 농장 내 한 구역을 ‘무료 사무 공간’으로 개방했다. 이곳에는 간단한 책상과 와이파이, 에어컨이 마련돼 있고, 원하면 농작업도 할 수 있다. 디자이너 아타오(阿涛, 29세)는 “컴퓨터만 켜놓고 논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오히려 집중이 잘 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며 “자연 속에서 출근한다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식사로 제공되는 간단한 농장식 도시락(30위안)이 하루 일과를 완성시킨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자연형 사무실은 도시의 소음과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청년들에게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일부 공간은 ‘농장+사무실’ 모델을 체험하기 위해 주말마다 예약이 꽉 차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농장 운영자는 “여기는 직장 없는 청년들의 쉼터이자 재충전의 공간이길 바란다”며, 단순히 일하는 곳을 넘어서 ‘마음의 피난처’ 역할을 강조했다.
공유 오피스일 뿐? 숨겨진 법적 리스크도
겉보기에는 단순한 ‘자율 사무실’ 같지만, 전문가들은 이 현상에 몇 가지 우려를 표한다. 특히 ‘가짜 출근 회사’가 일부 고객에게 ‘재직 증명서’를 발급하거나, 사회보험(社保)을 대납하는 등 불법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가 확인되기도 했다.
중국 변호사 자오량산(赵良善)은 “노동 계약 없이 재직증명서를 발급하거나 사회보험을 대납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라며 “이용자 또한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기 피해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일부 업체는 ‘취업난 청년’을 대상으로 ‘합법적인 경력 증명 보완’이라는 명목으로 불법 서비스를 홍보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당국이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을 지적한다. 단순한 개인 이용 공간을 넘어 ‘허위 경력 조작 플랫폼’으로 변질된다면, 이는 사회적 신뢰를 해치는 문제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짜 회사 홍보물(출처: 샤오홍슈)]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청년(16~24세) 실업률은 21.3%에 달했다. 일자리는 줄고, 프리랜서는 늘고, 정규직 개념은 흐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짜 출근 회사’는 직장이 사라진 시대의 새로운 적응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가짜 회사, 가짜 명함, 가짜 상사. 그러나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집중, 노력, 땀방울은 모두 진짜다. 이들에게 ‘출근’은 월급을 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세상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일종의 자아 회복 과정이기도 하다.
‘출근하는 척’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사회적 불안정과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이 스스로 만든 자율적 질서이며, 최소한의 체면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일상적 선택이다. 사회가 그들을 비웃는 대신, 왜 그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무실은 사라졌지만, 출근 본능은 남았다.” 이 짧은 문장이야말로, 오늘날 중국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일지도 모른다.
학생기자 김하연(저장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