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년 7월 9일~2015년 8월 30일)는 저명한 신경의학자이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와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쓴 <나의 주기율표(My Periodic Table)>라는 글은 화학에 도무지 흥미가 없었던 나에게조차 깊은 감동을 주었다. 누군가에게는 화학이 세상을 이해하는 창구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81세 생일에 81번 원소 탈륨을, 82세 생일엔 82번 원소인 납을 선물 받았던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83번 원소인 비스무트였지만, 그는 83세 생일을 맞지 못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흥분해서 당시 JSA에서 군복무를 하는 스무 살 아들에게 열정에 가득 찬 편지를 썼다. 20번 원소인 칼슘에 대해서, 그 유용함과 위험성에 대해서, 주변 선임이나 동료들과 좋은 케미로 만나길 바란다는 다짐까지.
그 후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북한과의 정치적 위기로 유서를 두 번이나 써야 했던 아들은 무사히 전역해서 직장인이 되어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20번 원소에서 30번 원소인 아연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유용성만큼 위험성을 가진 원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듯 아들에게도 많은 도전과 변화가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저마다 그 나이에 걸맞은 고유한 질량의 무게를 견디고 채우며 한 생애를 살아간다.
57번 원소는 ‘숨겨진 자’라는 뜻의 란타넘(Lanthanum, La)이다. 그리스어로 “숨다”를 의미하는 “lanthanein”에서 유래했다. 이는 당시 희토류 광물 속에 다른 원소들에 “숨어” 있어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며칠 뒤에 나는 58번 원소 세륨(Cerium, Ce)의 나이가 된다. 이들은 고급 광학 기기, 친환경 자동차,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등 다양한 첨단 기술의 성능을 높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뛰어난 보조자’ 역할을 한다. 둘 다 이름도 낯설고 눈에 잘 띄지도 않지만, 내 나이와 역할에 걸맞은 이 원소들이 정말 마음에 든다.
주기율표는 1869년 멘델레예프가 처음 만들었다. 그는 원소를 질량 순으로 배열하면 성질이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당시에 알려진 원소 중 많은 부분은 연금술사들이 발견한 것이다. 연금술사들은 값싼 금속을 금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물질을 혼합하고 가열하고 증류하는 등 수많은 실험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은(Mercury), 황(Sulfur), 비소(Arsenic), 안티몬(Antimony) 등 여러 원소를 발견하거나 기존 물질의 정제 방법을 발전시켰다.
고대 연금술사의 목표는 수은이나 납을 금으로 바꿀 수 있는 현자의 돌(Philosopher’s Stone)과 불로장생의 영약(Elixir of Life)을 찾는 것이었다. 비록 연금술사들의 노력은 실패했지만, 그것을 기초로 이루어진 현대 과학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연금술사들의 꿈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원소의 종류는 원자핵 속에 있는 양성자(Proton)의 수, 즉 원자 번호에 의해 결정되는데, 입자가속기로 수은(Mercury, 원자 번호 80)에 중성자를 충돌시키거나 핵반응을 유도하여 양성자 1개를 줄이면 금(Gold, 원자 번호 79)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달로 이미 100세 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앞으로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 역시 ‘엘릭서’가 현대적 차원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된 원소는 모두 118개다. 이 원소들 중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것은 92번까지고 93번 이후의 원소들은 인공 핵 합성 기술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자연 상태에서 찾을 수 있는 원소가 92번까지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