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 빛이 완연한 목련 나무가 댕고마니 거실에 앉아있는 나를 바라본다. 떨어진 나뭇잎들은 중정을 뒹굴고, 붉어진 단풍은 한여름의 더위와 푸르름을 기억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하다. 이렇게 초록의 추억을 완벽하게 배반한 한국의 가을은 내 향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상하이 더위도 한 풀 꺾였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푸르름이 교묘하게 남아 있을 상하이의 가을도 습관처럼 그리워진다.
가을이 한창일 무렵, 대형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를 조명하는 흥분된 평론들이 넘쳐났고, 덩달아 나의 ipad도 경주 APAC 소식을 퍼 나르느라 분주했다. 숨죽여 지켜보던 한미 관세 협상도 한숨 돌렸다 하고, 천마총 금관 예물이 미국의 ‘No King’ 분위기에 엇박자를 놓았다 해도 트럼프의 취향은 저격했다 하니 아무튼 다행이다.
미국식 친절한 관용구와 그에 맞춤한 환영의 말들로 긴장과 안도를 오가던 한미 정상회담이 회오리 바람처럼 지나 간 후,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은 시진핑 주석 국빈 방문에 집중되었다. 시주석이 탑승한 홍치(红旗)가 경주박물관 회담장을 향해 오방색을 휘날리는 취타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천천히 들어오는데 내가 왜 뿌듯한 지 실소가 나온다.

해외 생활을 하는 동안 9명의 대통령이 바뀌었고 크고 작은 선거가 많았지만 딱 2번 투표권을 행사했을 뿐인 나는 정치 무관심 층 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한중 정상의 건배사가 아름답게 들리고, 시주석이 인용한 최치원의 시구는 상하이에 첫 발을 내 딛던 아스라한 기억들을 소환시킨다.
천년 전 신라의 최치원은 ‘10년 안에 급제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는 아버님의 엄중한 바램을 안고 12살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 유학 길에 올랐다. 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식 교육에 대한 열망은 엇비슷했나 보다. 시주석이 인용한 ‘돛을 달아서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이 만 리에 나아가네’라는 시는 그가 귀국하는 뱃머리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을 타국 생활을 마감하는 감회가 천년을 뛰어넘어 내게로 밀려온다. 지난했던 당나라에서의 추억과 신라로 향하는 새로운 희망이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는 듯하다. 쇠퇴해 가는 신라에서 최치원의 개혁 의지는 길을 잃었고, 은둔 생활로 생을 마감하였다 하니, 개인적인 능력이 시대의 흐름과 만나는 운도 따라줘야 개혁도 꽃을 피우나 보다. 어린 최치원을 머나먼 뱃길로 유학을 보냈던 아버님은 고요한 은둔을 택한 아들에게 하늘에서 따뜻한 칭찬을 보내셨을 것이다. 정치가 나와는 무관하다 고집하려 해도 정치 환경이 이미 개인의 일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사진=양저우 최치원 기념관 내 고운 선생 좌상(출처: 네이버)]
모험처럼 살아온 상하이 생활은 익숙해지는 듯하면서도 멀미처럼 향수가 밀려오기도 한다. 나의 한국은 평안하고 훈훈한 형제 자매가 많은 친정집 같은 곳이다. 가을이 떠나기 전에 상하이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돌아 가면 익숙한 산책길을 걸을 것이며 지인들을 만나 맛난 식사를 같이 할 것이다. 나의 부재로 허전한 나날을 보냈을 배우자와는 따뜻한 밥상을 차려 고마움을 나눌 것이다.
매서운 겨울이 그리워지고 하얀 눈이 보고 싶어지면 1시간 30분 비행에 몸을 싣고 이웃집 한국으로 달려와서 머리에 흰 눈을 뒤집어쓴 목련 나무가 나를 바라보게 하고 중정에 쌓인 하얀 눈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즐길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이사 갈 수 없는 가까운 이웃이라고 했던가. 부지런히 오가면서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진 행운을 누릴 것이다.
밥 한그릇 안의 우주(yiemisook8@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