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M50 골목길]
얼마 전 ‘모간산루 M50(莫干山路 50号)’를 방문했다.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아득하다. 코로나의 어두운 터널이 시작되기 전에 와보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세월은 흐르지 않는 곳이 없다. M50의 탄생, 성장과 전성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곳의 여정은 나의 상하이 생활과 묘하게 흐름을 같이 하고 있는 듯하다.
M50는 1990년대 초, 국유기업 구조 조정으로 가동이 중단된 방적공장이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쓰여지면서 산업 잔해의 문화적 재탄생 이라는 시대적인 트랜드에 합류한다. 1999년 공장 창고에 최초로 입주한 예술가는 불에 탄 잡지와 고서들로 콜라주 작업을 하면서 중국의 전통을 해체하고 서구의 미술을 뛰어넘고자 했던 ‘중국 Pop Art movement’의 선두주자인 쉐송(薜松 xuē sōng)이다.

[사진= Xue Song ‘Phoenix Art from the Ashes’ 2019 Long museum]
예술가들이 그의 뒤를 이어 M50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2006년 ‘M50 창의 산업구’라는 명칭으로 브랜드화 된 후, 중국 현대 미술의 르네상스 물결에 올라탄 M50는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기점으로 그 명성이 정점에 이른다. 140여개의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공간과 갤러리, 디자인 스튜디오가 밀집된 예술 커뮤니티로 발전한 M50는 2000년대 중후반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문화 심장부 M50에서 벌어지는 행사와 전시는 나와 동료들에게는 아이디어의 창고가 되어 주었고, 창작 의지를 확인 해주는 자극이 되어 주기도 했다. 붉은 벽돌 건물 사이를 거닐고, 골목골목 숨어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와 전시장을 기웃거리는 일은 지치지도 않았다. 상하이에 소개되는 국내외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일은 즐겁고도 고마운 경험이었다. 타카시 무라카미(Takashi Murakami)의 아이처럼 해맑은 꽃그림을 처음 만난곳도 바로 여기다.

[사진= Takashi Murakami ‘Prayer at the Festival’]
까마득히 잊혀졌던 M50, 다시 찾은 그곳은 날씨탓인지 스산했다. 붉은 벽돌 건물은 고요했고, Shangh Art Gallery(香格纳画廊) 간판이 남아있는 흰색 담벼락에 담쟁이 넝쿨이 아련한 기억을 더듬듯 엉켜 있었다. 몇몇 갤러리들이 운영 중이라는 표지판을 걸고 있었지만 대부분 문이 닫혀 있거나 작품이 전시된 채로 고요히 세월의 흔적을 견디고 있었다.

[사진= ShanghArt Gallery]
골목을 기웃거리다 예전엔 없었던 초대형 건축물과 맞닥뜨렸다. 비현실 적으로 눈앞에 우뚝 솟아있는 ‘톈안첸수(1000 Trees, 天安千树)’ 건물의 생경함은 당황스러웠고, ‘산과 숲’을 상징한다는 1000개의 기둥과 7000그루의 나무를 이고지고 있는 대형 건축물과 M50는 인접한 이웃임에도 서로 낯가림을 하고 있었다.

[사진= M50에서 바라본 ‘톈안첸수 빌딩’]
온라인 수업에 매달리고, 백신에 시달리고, 격리를 겪어내고, 거주지 봉쇄의 아우성을 견뎌내는 동안 나만 세월의 채찍을 호되게 맞은 줄 알았다. M50도 그동안 도시개발의 거친 파도와 문화 소비 형태의 변덕스러움과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 못하는 궁핍을 혼자 견뎌내고 있었다. 아직도 작업실이 숨 쉬고 있는 골목을 벗어나는 걸음이 애잔하다.

[사진= M50 전시장 전경, 2026, Jan. 21]
한때 M50의 예술적 활기에 흥분했었고, 모두에게 벅찼던 시간을 지난 후, 이제 숨고르기를 하며 남은 길을 모색한다. 나는 M50가 간직한 문화적 생명력을 믿어볼 것이다. 붉은 벽돌과 천정을 받치고 있는 철빔들, 굽이굽이 철계단과 혈관같은 골목골목들은 현대적 필요가 무엇인지 귀기울일 것이며, 문화적 취향의 변덕에도 너그러울 수 있는 유연성을 키울 것이며, 낯선 이웃 ‘천안천수’와도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 믿는다.
밥 한그릇 안의 우주(yiemisook8@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