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제목이 주는 타격감이 상당하다.
권력을 가진 한 개인이 얼마만큼 나라를 조질 수(?) 있는가를 하릴없이 바라보며 ‘헬조선인’의 한 명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웠던 것은 잠시,
큼직한 국가적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소위 국뽕에 취해 ‘대!한!민!국!’을 목 놓아 부르짖던 소싯적 우리가 아니던가. 하물며 내 나라를 떠나오니 없던 애국심도 스멀스멀 기어 나올 판국이다.
내가 장강명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문학동네 작가상 제20회 수상작을 통해서였다.
따옴표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다소 산만하고 난해한 문장과 난데없는 ‘우주 알’의 등장에 당최 적응되지 않아 몇 번의 위기를 겪고서야 종국에는 조용히 뇌까렸다, ‘장강명이 아주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각 인물들의 서사가 아주 촘촘하고 매끄러워 글밥 속에 살아 펄떡대고 있으니 이쯤 되면 작가의 필력으로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지경이다.
공대 오빠가 신문사에서 오래 구르다 보면 뭇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재주가 생기는 걸까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 책, 도 마찬가지로 주인공 계나의 관점으로 원맨쇼를 하는 것 마냥 따옴표 없는 나레이션으로만 한 가득이다.
경쟁력 없는 스펙에 별 볼 일 없는 직장, 집도 지지리 가난해 오래 사귄 남자 친구의 부모로부터도 괄시당하더니 그저 그런 외모와 성격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살기 힘들다고 판단, 갑작스럽게 터진 생리에 피를 흘리면서 국경 넘어 호주로 향한다.
해외 생활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사람들과의 관계나 금전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위조 수표범으로까지 몰려 호주 현지 기소되기에 이른다. 그때에도 하느님이 보우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었으니 슬프게도 계나는 나라 망신 제대로 시킨 국외자였을 뿐.
돈 많은 인도네시아 남자나 다시 돌아온 남자 친구를 과감히 밀어내고 주도적인 인생을 선택하기로 한 계나는 이렇게 말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 행복할 수 없다. 나는 두려워하며 살고 싶지 않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 계나는 지금 행복할까?
‘한국이 싫어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에 시작은 타의였으나 현재는 자의로 상하이를 살아내고 있는 나는 ‘나름 시도는 해 본 국외자’의 시선으로 계나를 이해한다.
그렇다고 ‘한국을 떠나면 그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일까’에는 자연스레 물음표가 붙는다. 해석과 비평은 언제나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활자가 창조해 낸 가공의 인물들에 허물없이 빙의되어 책을 들고 있는 시간만큼의 또 다른 세계를 살아내는 것과 다름없다. 그 세계에서 몽글몽글 사랑도 하고 하릴없이 남을 간섭하면서 분노하거나 가슴 아파하니 나는 오늘도 어쩔 수 없는 선의의 오지라퍼가 된다.
끝으로 내 마음대로 피셜 하나,
요즘 글 잘 쓰는 작가 이름에는 ‘강’ 자가 들어가나보다.
장강명 이 사람, 요물이다.
최혜정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