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구를 고정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책이 처음 나오자마자 읽었을 때는 ‘얼굴도 모르는 이토를 수많은 러시아군사들, 일본군사들이 나열해 있는 상황에서 세 발의 총알로 명중을 시킨’ 안중근 의사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라고 생각했다.
상하이 격리와 봉쇄 생활을 거치면서, 먼 이국땅 중국에서 침묵하던 전 세계에 ‘우리가 살아있다’는 목소리를 낸 우리 독립투사들의 용감한 투지들이 구체적으로 보이면서 느껴졌다.
‘살아있는 대한의 혼….’
봉쇄가 끝나고 이태원에서 참사가 나고 서울에 갔다가 상하이로 직접 들어오는 비행기표가 없어서 대련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 원래 8일 호텔 격리인데 대련에서 상하이행 비행기를 타려면 9일 격리를 해야 했다. 호텔에서의 9일 격리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9일째 되는 날 아침에 호텔에서 풀려나자마자 여순 감옥을 들렸다 상하이로 갈 꿈에 부풀어서였다. 그러나 대련은 상하이와 항주 같은 대도시가 아니어서인지 격리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켜 상하이행 비행기 안에 격리인 5인이 탑승하고 자리에 안전벨트를 매는 순간까지 감시인이 따라다녔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자유’라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백 년 전 우리 독립투사들의 이 땅에서의 삶이 어땠을지 그려졌다.
그때부터였다. 여순감옥과 하얼빈을 다녀오는 것…
1910년 처형당한 안중근 의사 유해를 115년 지나서도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 아직도 인생의 과업으로 그 유해를 찾고 있는 분이 계신 것을 알고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 지점과 여순 감옥을 다녀온다는 계획하에 읽어 내려가는 한 장 한 장은 더욱 구체적인 일정으로 되살아왔다.
‘신부와 면회를 허락한다는 통보를 받고 안중근은 집행이 임박했음을 알았다. 안중근이 먼저 안공근에게 말했다.”오늘은 네가 잘 왔다. 내가 죽으면 내 시체를 하얼빈에 묻어라. 하얼빈은 내가 이토를 죽인 자리이므로 거기는 우선 내가 묻힐 자리다. 한국이 독립된 후에 내 뼈를 한국으로 옮겨라. 그전까지 나는 하얼빈에 묻혀 있겠다. 이것은 나의 유언이다. 내 뜻에 따라다오.’
막내 동생에게 수식어가 없는 간결 담백한 유언을 하는 이 장면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115년이 지난 지금도 미완으로 남아있다. 그 당시 일본 담당자들은 여론화가 될 것을 꺼려 하얼빈 매장을 허락하지 않고 감옥 공동묘지에 묻었다고 문서를 남겼다. 그 후 수차례의 유해 발굴 시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유해 발굴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작가는 말한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김효순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