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 : The Proposal
SF에서 그릴 미래의 어느 세상에 그닥 어울릴 듯하지 않은 너무나 ‘현재’스러운 제목이긴 했지만, 미스테리를 캐는 마음으로 첫 장을 열었다. 이 소설은 우주에서 나고 자란 한 ‘우주인’ 군인이 지구에서 나고 자란 ‘지구인’ 애인에게 보내는 12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애인에게 쓰는 편지다 보니, 부드럽고 조분조분한 어투에 간간이 그리움이 진하게 읽히지만, 사실 주된 내용은 어마어마한 우주전쟁에 대한 이야기이다.
12통의 편지를 쓰는 동안 주인공은 여섯 번 적과의 교전을 치른다. 정체도 알 수 없고, 우주 공간 어느 차원의 문을 뚫고 나오는지 갑자기 등장하는 적들, 눈 깜짝할 새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적들을 어떻게든 막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고군분투하고, 몇 광 초의 차이로 누구는 목숨을 건지고 누구는 죽음을 맞는다. 사실 소설을 읽는 동안 이 주인공이 그만 사랑도 못 이루고 죽어버리는 비극이 되는 것은 아닌가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공기가 없어) 소리 전달이 없는 적막한 우주 공간에서 수천 척의 아군과 적군의 우주선들이 쏘아대는 수천 발의 광선들을 상상하노라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꽤 스펙터클한 또 하나의 ‘스타워즈’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리고 요즘에 나오는 다른 SF들도 마찬가지로, 상상을 자극하는 희한한 볼거리를 펼치기보다는 광활한 우주에서 태어나는 인구들이 만만치 않게 많아질 그 시대에 우리 인간들의 삶은 어떨지에 대한 상상의 이야기이다. SF라는 요소는 은유를 위한 무대 장치일 뿐,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지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도시만 한 크기의 우주선을 예사로이 우주로 보내고, 지구의 중력과 바다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시대에도 여전히 전쟁이 긴박하고, 여전히 그리움을 나눈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하늘과 땅만큼 다른 ‘우주인’과 ‘지구인’은 어떻게 서로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을지, 지구 출신들은 왜 우주 출신들을 근거도 없이 의심하는지, 출신이 다른 우리들이 서로 차별 없이 오해 없이 평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지.
지구의 애인을 만나기 위해 적막한 우주 공간을 170시간 날아 마침내 주인공이 물리적 거리감 없이 애인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행복감을 보면서, 서로의 마음을 전하는데 단 1초의 거리감도 없는 요즘의 우리들은 오히려 우주 공간만큼의 심리적 거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배려심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었어” 하고 내가 너에게 말했을 때, “나도” 하고 네가 나에게 대답해 주기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기억해. 사랑한다는 너의 말에 단 한 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해도 너에게 닿는 데 17분 44초가 걸리고 그 말에 대한 너의 대답이 돌아오는 데 또다시 17분 44초가 걸리는 지금의 이 거리를 두고 내가 가장 숨 막히는 게 뭔지 아니? 그건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갑갑함이야.
우주로 여행을 다니는 그런 시절에도 이런 사랑을 하고 행복을 느낀다면, 미래도 여전히 따뜻하고 살 만 하겠다고 안심이 된다.
무중력 세공 숍에서 반지를 주문하고 ‘적절한’ 청혼 타임을 기다렸던 주인공이 마침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직접 애인의 손가락에 끼워주고 싶었으나, 결국은 지구로 돌아가는 누군가에게 들려 보내고, 그는 미지의 우주 공간으로 탐색을 떠난다. 반지와 함께 지구로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이 어쩐지 그의 마지막 말인 것처럼 아련하게 마음에 남는다.
반드시 돌아올 거야. 이상하지? 나 같은 우주 태생이 어딘가로 돌아올 생각을 하다니.
이제 나도 고향이 생겼어. 네가 있는 그곳에. 고마워. 그리고 안녕.
우주 저편에서 너의 별이 되어줄게.
양민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