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조호바루로 넘어가는 길 양쪽엔 거대하고 풍성한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상하이에 처음 왔을 때도 녹나무 가로수가 한국과 다른 거리 풍경을 만들어 주었는데, 말레이시아는 적도 가까운 나라라서 그런지 가로수 수종이 또 다르다. 가는 길에 파리바게뜨 공장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현재 조호바루에 대규모 투자를 한 한국기업은 파리바게뜨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주재원 가족의 자격으로 유학을 오는 게 아니라 유학 자체를 위해 온 분들이 많고,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가 꽤 많아 보였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데다 싱가포르가 가깝고 치안이 좋다는 점에서 필리핀 대신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모양이다.
동행한 남편은 17년 전 사업차 조호바루에 왔었다. 당시 고객사가 모토로라의 휴대폰 생산 대행업체였는데, 애플 아이폰의 출시로 모토로라가 해당 사업을 중단하면서 매년 10억 달러가량의 매출이 사라지는 바람에 남편은 이곳에 플랜트를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온 이튿날 아침, 구글이 한국의 삼성과 젠틀몬스터와 협력해서 스마트 안경을 만들 계획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남편은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스마트폰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왔지만, 스마트안경의 상용화는 시간문제인데, 또 어떤 변화가 몰려올까? 누구에겐 위기가 되고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테니 기대와 걱정이 교차할 수밖에.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게다가 AI가 좋은 일자리들을 대체하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인생을 책임지고 경영할 능력보다 입시와 성적에만 매달리는 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이제 일자리는 구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대학의 선발기준도 이러한 사회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입시냐 인생이냐?”라는 화두로 교육설명회를 시작한 이유다. 상하이에 이어 쑤저우에서 강연요청이 오고, 이어서 말레이시아 조호바루한인회의 초청을 받아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틀간 조호바루 구도심에 있는 한인교회와 신도심에 있는 교민회관에서 현지 교민들과 만났다. 내가 18년간 상하이에서 살게 될 줄 몰랐듯이, 말레이시아에 와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분들은 아무도 안 계셨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제학교 학비와 물가 때문에 한 달 살기 하러 오셨다가 눌러앉은 분들도 계시고, 입시 경쟁이 심한 한국보다 더 나은 여건에서 교육하고 싶은 마음으로 오신 분들도 많았다.
조호바루 한인회와 연결해 준 J 역시 갑작스러운 남편의 근무지 변경으로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으로 옮겨왔고, 아무도 없는 이국 타지에서 아이의 입시를 준비하며 혼자 닥치는대로 모든 걸 해내야 했다. 상하이 코로나 봉쇄를 함께 겪어낸 이웃이기도 했던 그녀의 딸은 내가 강연을 마치고 상하이로 돌아오던 날,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낭보를 전해주었다. 고군분투하는 부모님을 보며 스스로 착실하게 자신만의 커리어를 만들고 학업에 전념한 덕분이다.

상하이로 돌아오자 때마침 NUS에 다니는 제자가 찾아왔다.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대신 3년간 자국에서 의무적으로 일하게 하는 제도가 있는데(Tuition Grant), 외국인 취업 기회가 줄어들어 이미 받은 장학금 8000만 원을 반납하고 떠나야 하는지 고민 중인 유학생이 늘고 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뿐 아니라 상하이에서도 싱가포르로 진학하는 것을 선호하는 추세인데, 변화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여러 방면에서 다가오고 있다.
나름 잘 나가던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 교육 때문에 해외살이를 택한 엄마들과 나눈 긴 대화가 떠오른다. 기러기 가정의 고충도 생각난다. 이렇게 자녀 교육을 위해 다들 애쓰는데 이러한 에너지들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은 것일까? 교육은 이미 자녀의 대학입시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생존과 부모님들의 노후 문제, 가족의 화목과 행복에 직결되는 어려운 숙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변화의 시대, 입시에 이어 인생의 힘이 될 수 있는 교육은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인가? 교육의 도시 조호바루와의 조우는 다시금 교육의 미래에 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