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30년이 되어가는 상하이 생활 동안 나는 다양한 취미를 즐겼다. 바이올린, 그림반, 요가, 필라테스, 뜨개질, 독서반, 글쓰기, 중국어 노래반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며 나름 애 셋 키우면서 삶을 즐겁게 살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서도 지금 5년째 하고 있는 한국어 합창단은 특별한 기쁨을 주는 공간이다.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것을 넘어,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유대감, 음악이 주는 치유의 힘, 그리고 화음 속에서 느껴지는 황홀한 일체감까지. 한국어 합창단은 나에게 매일매일의 작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가끔은 빤짝이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는 짜릿함까지 느끼게 해주는 훌륭한 취미생활이 됐다.
한국어 합창단에 들어간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오랜 시간 중국에서 생활하며 중국어와 영어합창단에 들어갔지만, 중국어는 가요가 아니라 가곡이다 보니 애국적인 내용이 많아 외국인인 내가 같이 온마음으로 진정성을 갖고 부르기 힘들었고, 애들 학교 영어 합창단은 단어와 박자가 한국어처럼 딱 맞아 떨어지는 게 아니어서 그렇잖아도 박치인 내가 정확한 발음으로 부르는 것조차 어려워 2,3 번 하고 포기하게 됐다. 그래서 한국어 합창단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는 순간 마음이 두근거렸다. 첫 연습 날 지휘자의 따뜻한 미소와 함께 시작된 발성 연습, 박자 맞추기, 그리고 익숙한 한국어 가사가 흘러나오자 서서히 노래본능이 되살아났다.
합창의 진정한 매력은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드는 음악에 있다. 각자 다른 목소리, 다른 음역대, 다른 호흡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그 순간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소프라노 메조 알토가 서로를 받쳐 주며 완성되는 화음은 마치 색채가 겹쳐지며 빚어내는 그림 같았다. 때로는 박자가 안 맞아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고, 고음이 잘 안 나와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휘자의 지도 아래 계속 연습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의 목소리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합창단의 즐거움은 노래만이 아니다. 연습이 끝난 후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단원들끼리 친해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이도 생각도 종교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노래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어우러져 위아래로 10살 차이가 나는 친구들이 생기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도 받고 공감도 한다.
합창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명상 상태가 된다. 다른 생각은 모두 접어두고 악보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흡을 조절하고, 음정을 맞추고, 옆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나를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이 더욱 잦아지면 우리의 실력과 우정도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 된다. 십대 여고 학창시절 고3같은 긴박한 느낌의 단원들이 긴장감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하며 드디어 무대에 섰을 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관객들의 박수, 함께 땀을 흘리며 완벽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한 무대, 공연 후의 안도감과 성취감,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상하이에서 한국어 합창단은 나에게 노래보다 더 큰 선물을 주었다. 공동체와 하나임을 자각하게 해주고, 목소리가 적절히 서로 얽힐 때 차분한 행복감이 솟아오른다. 음악은 혼자서도 즐길 수 있지만, 함께할 때 그 빛이 더욱 빛난다. 앞으로도 이 작은 행복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하며 살아가고 싶다. 합창단의 즐거움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걍걍쉴래(lkseo70@qq.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