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또 늦장이다. 부쩍 더 심해진 것 같다. 해야 할 일은 미루고, 약속은 곧잘 늦는다. 일정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준비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런 무책임하다, 게으르다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같은 목소리가 있다.
“나는 결국 잘 못할 것 같아.”
관계든 일이든, 결국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부담만 줄 거라는 마음이 한켠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음은 삶의 흐름을 결정하는 방향이기에, 나는 내가 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을 고스란히 일상으로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나를 ‘포기하는 사람‘으로 학습시켜온 시간만큼, 변화의 벽은 높아졌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나를 위해 그 벽을 정성껏 쌓아왔다.
“이건 어차피 안 될 거야.”
“이미 늦었어.”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린 순간, 준비도 약속도 공부도 살아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살아지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과, 내가 나에게 허락하는 것 사이의 깊은 간극. 그 충돌은 혼란을 낳고, 그럴 때마다 나는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런 마음을 털어놓으면, 더 힘들어질 때도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안 늦었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저마다의 보이지 않는 마음 벽돌을 쌓아왔고, 그건 때로 나 자신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들키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왜냐하면 시도했다가 안 되면, 나는 진짜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니까..
“늦게 준비해서 못한 거야.”
“지키지 않아서 틀어진 거야.”
그렇게 ‘못 한 사람’이 아니라, ‘안 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된다.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회피다.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허락 안 할까봐 시작하지 않았다. 공부를 미루며 벼락치기를 하면, 시험을 망쳐도 면피가 되었다. 마음 한편에선 더 잘하고 싶었을텐데, 그 욕망을 미리 꺽어두는 방식으로 나를 보호해온 것이다.
욕망과 두려움은 결국 하나다. 아무도 처음부터 ‘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될 거야’라고 믿으며 태어나지 않는다. 삶 의 경험들이, 저마다에 대한 믿음을 만들고, 그 믿음이 마음이라는 방향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믿음은 과연 누구의 시선으로 만들어졌던 것일까?
되돌아보면, 피했던 순간들은 ‘안 되는 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되고 싶은 나’를 감추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금 늦더라도, 어설퍼도, 실패하더라도, 이제는 시도해보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살아간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그 길밖에 없지 않을까? 시도하지 않으면, 내가 진정 원하는 나는 언제까지나 꿈으로만 남을 테니까.
뮤약사(pharmtende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