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에서 상하이까지
한국에서 태어나 20여 년을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가 잘 아는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또 20여 년을 살았다. 그런데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흔히들 ‘정답 없는 인생’이라 하지 않던가.
2001년 6월, 단 3개월 예정으로 우연히 중국 상하이에 오게 되었는데, 이곳에서 또 다른 20여 년을 살아가게 될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동물에게 귀소본능이 있다지만, 나 또한 어느덧 상하이에서 정들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쌓이며 이곳에 깊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고국인 한국으로, 그것도 처음 올 때처럼 6월에, 햇수로 꼭 25년 만에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사진= 가족사진 2010년(上), 2025년(下)]
위기와 기회, 그리고 지구 백 바퀴의 여정
상하이에 온 지 3개월이 지날 무렵, 한국의 대기업 S사가 중국 남쪽 동관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입찰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그마한 공사일을 수주하면서 중국에서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만 해도 이곳에서 20년 넘게 살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
2년이 지나자 한국의 3대 반도체 회사들이 너도 나도 중국으로, 그것도 내가 머물던 상하이 인근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쑤저우의 S사, 난징의 L사, 우시의 H사가 줄줄이 들어왔고, 마침 내가 설립한 회사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이들 세 회사의 클린룸 공사를 거의 전담하며 바쁘게 몇 년을 보냈다.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가 닥쳤고, 나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2009년 말에는 공사 중 천장이 무너지는 사고로 사업이 무너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그 어려운 시기를 1~2년 가까이 견뎌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베트남 호치민에 있는 미국계 기업 인텔의 반도체 공장 클린룸 공사를 수주하게 되었고, 뒤이어 2008년 한국 S사가 하노이 인근에 휴대폰 공장을 건설하며 참여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동남아시아로 진출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몽골을 거쳐, 저 멀리 헝가리까지도 발을 넓혔다.
2016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본사를 두고 해외 7개국에 법인과 공장을 설립하여 활동하였으며, 그동안 비행기를 1,600회 이상 타며 지구를 백 바퀴 이상 도는 거리를 오갔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모아 2016년 <상하이 콧수염, 지구 백 바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상하이의 빛나는 순간들, 공동체와 가족의 기억
상하이에서 20여 년을 살며 좋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좋은 일들이 훨씬 더 많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상해한국상회(한국인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2009년과 2010년에 ‘한민족 큰잔치’를 개최했던 일이다. 당시 상하이에는 약 10만 명의 한국인과 10만 명의 조선족 동포가 거주하고 있었는데, 5,000여 명이 하루 종일 함께 어울려 흥겹게 보냈던 기억은 지금도 마음 깊이 남아 있다.
2009년 4월에는 상해한국학교의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하이 총영사관과 기업, 교민들의 협조에 힘입어 장학금을 전달한 일도 뜻깊은 추억이었다.
또한 2010년 4월 30일, 상하이 엑스포 개막을 하루 앞두고, 대한민국 이명박 대통령이 한중 정상회담 차 상하이를 방문하셨다. 다음 날인 5월 1일에는 교민 간담회가 열렸고, 당시 한인회장이었던 나는 대통령을 비롯해 장관, 국회의원 다수와 350여 명의 교민들 앞에서 환영사를 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큰 행운이 이어졌는데, 둘째 딸 소라가 2010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진’으로 당선되며 한때 나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셋째 딸 유리가 미스서울 ‘미에 당선되어, 상하이에서 가족 모두가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시절 홍췐루 한국인촌과 한국식당들은 10년 가까이 큰 호황을 누리며 명실상부한 ‘코리아타운’으로 중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사진=2011년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중국지역추진위원장 활동 당시]
작별의 시간, 아름다웠던 상하이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2019년 말부터 코로나(COVID-19)가 발생하면서 국내외 이동이 어려워졌고, 중국인뿐 아니라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가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때부터 한국인들과 한국 기업들이 하나둘 상하이를 떠나기 시작했고, 2024년 말에는 상하이에 남은 한국인 수가 만여 명 수준으로 급감하게 되었다. 10여 년 전의 영광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한국 기업들도 어려움을 겪으며 내 사업에도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고, 결국 회사 축소를 준비하면서 25년 만에 상하이 회사를 정리하고 2025년 6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쉬움이 마음 깊이 남는다.
지난 25년을 돌아보면, 중국에서 수많은 일과 수많은 사람을 만나 우정을 나누고, 함께 웃고 울며 살았던 시간들이 너무나 즐겁고, 정말 행복했다. 그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가운데,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늘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상하이를 조용히 떠난다.
정한영(한영E&C 회장, 17~18대 상해한국상회 회장)

[사진= 2015년 정한영 회장 자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