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의 햇살은 부지런도 하다. 아침 7시만 넘어가도 쨍쨍하니 말이다.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새벽 6시쯤 남편과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그린벨트 숲을 재조성해 놓은 곳이라 운동이나 산책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남편은 기다란 가로수길을 걸으며 시 낭송하기를 좋아하고,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하기를 좋아해서, 공원에 도착하면 서로 헤어졌다 돌아갈 때 다시 만나기로 했다.



향나무가 곧게 뻗은 길을 걷다 보면 작은 다리가 나오고 다리 양옆으로 초록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풀숲 사이에 할아버지 한 분이 보인다. 마치 모내기를 하듯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양손에 든 하얀 수건으로 반원을 그리며 풀숲을 훑고 간다. 수건에 부딪힌 풀들은 잠시 쓰러졌다 이내 다시 일어선다. ‘참 신기한 운동도 있네?’하며 노인의 별난 운동법으로 치부했다.
다음 날도 할아버지는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더 돌고 돌아오는 길에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운동을 마친 할아버지는 젖은 수건을 유리병에 대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짜고 있었다. 유리병 담긴 옅은 초록빛 물이 찰랑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대서(大暑) 기간이라 새벽이슬을 채집 중이라고 했다. 대서는 24 절기 중 하나로 소서(小暑)와 입추(立秋) 사이에 있다. “염소뿔도 녹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무더위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다. 이 기간에 나온 이슬은 하늘과 땅이 정화를 이루는 최고의 진수(精髓)라고 했다. 예부터 농부들은 그 진액을 마시며 하늘과 땅의 관계를 되새기고 몸과 마음을 정화시켰다고 했다. 더러운 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가장 깨끗한 물이라서 사람 몸에 부드럽고 달게 스며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제야 나는 할아버지의 몸짓이 그저 별난 운동법이 아닌, 하늘과 땅과 소통하는 겸손의 몸짓이었음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의 일상을 돌아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컴퓨터를 켜서 뉴스를 보고, 휴대폰으로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주문한다. 챗GPT와 대화를 나누고 업무의 대부분을 온라인으로 처리한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불편함이 없다. 필요한 건 무엇이든 손가락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된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오히려 좁은 방구석 세상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할아버지가 사는 세상이야 말로 넓은 세상이다. 하늘과 땅을 느끼고 감사하는 삶 속에서 대자연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피부로 느끼는 절기의 변화, 모공 속의 땀방울, 다리에 스치는 풀의 감촉을 통해 더 큰 세상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손가락 끝으로 만나는 세상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온전히 존재하는 나 자신을 느끼며 자연과 소통하려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