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TV에서 방송인이 된 추성훈과 그의 일행이 중국 충칭에서 국수를 주문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중국어가 통하지 않자 손짓발짓, 바디랭귀지를 총동원해 간신히 주문을 마쳤다. 충칭은 지역 방언이 심해 번역 앱도 무용지물인 것 같았다. 처음 중국에 왔을 때의 내 모습도 딱 저랬을 것이다. 지금은 제법 자연스럽게 음식 주문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메뉴판의 한자를 대충 짐작해 손가락으로 짚어 주문하곤 했는데, 막상 나온 음식이 예상과 달라 젓가락도 못 대고 나온 적도 있었다. 어떤 재료로 만든 음식인지 모르는데다 처음보는 낯선 비주얼은 식욕마저 앗아갔다.
추성훈은 진한 마라 소스에 비빈 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한 그릇에 10위안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연신 감탄했다. 처음에는 흔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인가 싶었는데, 이들은 고상한 관광객이 아니었다. 매 끼니의 밥값을 벌기 위해 극한의 노동을 하며 최저시급을 받는 처지였다.
충칭에서는 ‘방방(棒棒)‘이라고 불리는 전통 짐꾼이 되어 무더위 속에서 짐을 날랐다. 옷이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일하고 나서, 세 명이서 번 돈은 고작 100 위안 남짓. 상하이 사는 우리가 흔히 한끼에 쓰는 값이었다. 이 돈으로 세 사람이 그날의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이집트에서는 한화로 시급 500원에 쓰레기 처리장에서 재활용품 분류 작업을 했다. 추성훈은 전 재산 1,300원으로 세 사람의 끼니를 마련하려고 시장을 돌며 흥정을 했다. 번듯한 식당은 언감생심. 북적이는 재래시장에서 현지인들이 먹는 값싼 음식으로 겨우 허기를 달랜다. 하루 땀 흘려 번 밥값이 딱 그만큼인 것이다.
‘밥값’의 의미를 참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우리는 결국 ‘제 밥값 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교육받으며 살아왔거늘. 언제부터인가 의미 없고 불필요한 소비만 해대고 있는 잉여인간이 된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을 때는 나도 눈에 보이는 생산적인 일을 하며 경제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주양육자인 내가 필요했고, 그 역할이 내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열심히 밥값을 할 때였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보다 더 현명해졌고, 각자의 일은 알아서 할 정도로 컸다. 내 시간은 느슨해졌고, 최소한의 부지런도 떨지 않으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날도 늘어난다. 움직이지 않으니 배도 그리 고프지 않다. 그러나 입맛은 점점 섬세해지고 까다로워져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탐닉은 오히려 커져간다. 이런 내게 ‘추성훈 아조씨’가 묻는다.
“밥값은 하고 있나?”
요즘 한국에는 ‘먹방’이 넘쳐난다. 수십 인분의 음식을 쌓아두고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를 과시하는 콘텐츠는 이제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졌다. ‘Mukbang’이라는 단어가 옥스포드 영어사전에까지 실렸을 정도니. ‘먹방’에서 음식은 더이상 한끼의 ‘밥’이 아닌, 먹어 치워 없애야 하는 도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넘쳐나는 음식과 자극적인 장면 속에서 밥 한 끼의 의미와 무게는 점점 가벼워지는 것 같다.
그저 흔한 예능 프로그램인 줄 알았던 그 방송에서 밥 한끼의 철학과 미학을 새삼 깨달았다. 밥 한 끼의 값이란, 단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과 땀이 응축된 결과라는 것. 우리가 쉽게 넘기는 숟가락질이 지구의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텨 얻어낸 산실이라는 것.
습관적으로 타오바오 앱과 음식 배달 앱을 열다 말고 잠시, 멈짓한다. 오늘 나는 내 소비와 밥값이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보냈을까.
올리브나무(littlepool@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