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현재 시점, 나는 상하이 생활 23년 차에 접어든 ‘신상하이인’이다. 올해 딸애는 25fall로 드림스쿨 꿈을 이루어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그 동안 손녀 딸 애지중지 키워주셨던 부모님도 고향에 들어가시는 바람에 상하이엔 나랑 남편 둘만 달랑 남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주방과 거실에서 분주하게 돌아치던 부모님의 그림자도, ‘엄마’를 부르는 딸애의 응석어린 목소리도, 찾아볼 수도 들을 수도 없이 집안은 낯선 적막함이 가득하다. 그래서 새벽에 톡을 해오는 딸애의 연락이 세상 반갑다.
얼마 전 딸애는 기숙사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내왔다. 제목은 “스페셜 기숙사 파티”였다. 동영상을 클릭했더니, 거기에는 딸과 친구들이 모여서 삼겹살을 구워먹는 떠들썩한 장면이 펼쳐졌다. 여러 나라 말이 섞여 왁자지껄한 가운데 딸애는 삼겹살과 가위를 들고 옆에 있는 친구한테 우리말로 묻고 있었다.
“언니 이 삼겹살은 어떻게 자르는 게 좋을 것 같아? 너무 두꺼워서 어떡할지 모르겠어.”
“음.. 이건 이렇게 세로 살짝 쪼개고 나서 가로로 자르면 입에 넣기 좋을 것 같아.”
옆에 친구가 미소를 띤 채 답했다. 딸애는 “오케이 알았어! 언니 짱! 언니랑 같이 하니까 요리가 쉬워지는 걸!”하면서 엄지 척을 내밀었다. 그러다 갑자기 영어로 “하이! 노우노우! 스톱! 먼저 상추를 손에 펴놓고 삽겹살, 밥, 쌈장을 이렇게 얹어준 다음 한 입에 쏘옥~” 하면서 직접 상추로 쌈을 만들어 주변 친구들한테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2분 남짓한 동영상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바로 딸애가 우리말로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대학에 가서도 우리 말이라니 너무 반가워서 동영상을 본 직후, 바로 화상채팅을 연결했다.
“우리 말은 누구랑 하는 거야? 학교에 한국인 친구도 있어? 삼겹살 파티는 어떻게 하게 된 거야?”
“응, 그 친구는 우리 과 한 살 위인 한국인 선배야. 너무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야. 평소에 언니랑은 우리말이 편해서 우리말로 대화해! 언니가 중국어에도 관심이 많아서 내가 가끔씩 중국말을 가르치기도 해. 삽겹살 파티는 기숙사에서 다양한 나라 음식을 나눠먹자는 아이디에서 시작했고 나랑 언니랑 같이 삼겹살을 준비해서 친구들 초대했어! 다들 너무 맛있다고 해서 신나~”
그리고 딸애는 계속해서 말했다. 여기서도 내가 우리말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 할 줄 아는 언어가 많으니까 여러 나라 친구들과도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어, 또 매일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도 하고 서로 다른 음식도 먹어보고 대학생활이 점점 더 재밌고 다채롭고 충실해 지고 있어, 다음에는…… 그렇게 나와 딸애는 우리 말로 거의 1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딸애는 대학교 펀팩트(fun fact) 활동에서도 “나는 상하이에서 태어난 중국인이지만, 모국어는 한국말이다”고 소개했다. 펀팩트는 미국 대학에서 새로운 모임을 시작할 때, 자신의 독특한 점이나 반전 매력을 소개해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고 어색함을 깨는 활동이다. 우리말도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딸애는 펀팩트에서도 자기만의 특별한 배경과 색깔, 매력을 재미있게 잘 보여줄 수가 있어서 만족스러워했다. 진짜로 그 소개를 듣고 주변 친구들이 “정말!? 어떻게? 한국말을 모국어로 할 수 있어?”라며 호기심이 가득해 했고, 그로 인해 딸애는 많은 친구들과 화젯거리가 많아져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말을 잘 할 수 있다는 점은 딸애 대학입시 에세이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딸애는 자신의 특별한 ‘신분’(중국 교포)과 정체성에 대해 겪었던 혼란을 언급하면서 “상하이에서 태어나 중국어 환경에서 자랐지만, 집에서는 우리말을 하면서 일찍 언어의 다양성에 대해 배웠다. 서로 다른 언어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접하게 되었고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각자의 생각과 감정이 다를 수도 있다 점도 배웠다. 이런 경험으로 타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상황을 이해하며 포용하는 오픈 마인드가 생겼다.”라고 적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당시 입학사정관으로부터 “다양한 문화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 대부분은 그 경험을 통해 깊이 있는 성찰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도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다른 학생들한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상하이란 도시에서 살면서 쉽지만은 않았던 우리말 공부였지만 그 노력이 딸애의 삶에 또 다른 색채를 입히고 세상의 문을 하나 더 열어주고,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준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고 행복하다. 딸애는 대학에서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딸애가 앞으로도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문화를 마주하며 보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쌓아가는 모습을 기대하고 바라본다.
상하이 린(1660324630@qq.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