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음력의 절기节气가 뭔지 전혀 개의치 않고 살다가, 이번 겨울 정신이 번쩍 들게 추웠던 지난 주, 특히나 상하이에서 참으로 보기 드물게 눈발이 휘날렸던 그날이 대한大寒이었다는 걸 알고 바로 날씨를 납득했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따위는 상상하기도 힘든 그런 상하이에서 눈발까지 날리며 영하로 내려 간 드문 날이었지만 대한이라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영하 1,2도에 수도관이 얼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베란다에 나가서 혹시 창문이 열려 있지는 않은지 밤새 수도관은 괜찮겠는지 살피며 나름 ‘동파’ 대비를 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상하이가 엄청 춥다고 했더니, 춥다는 거기는 기온이 몇 도냐 고 물어본다. 영하 2도까지 내려 갔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그게 말이냐는 반응이다. 그 당시 서울은 체감 온도 영하 17도에 함박눈이 며칠째 내리고 있었으니 영하 2도에 부산 떠는 내가 참 싱겁게 보이기도 했으리라.
태어나서 쭉 사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살다가 상하이에 와서 겨울인 듯 겨울 같지 않은 미지근한 겨울과 극한의 체력 테스트를 받는 듯한 견디기 힘든 여름을 십여 년 넘게 보내다 보니, 이렇게 쨍한 영하의 겨울 날씨가 찾아오면 ‘그 시절의 서울’이 생각나며 무척 반갑다. 겨울이면 시시때때로 함박눈도 맞고 볼이 터질 듯이 추워 두 손 모아 입김을 불기도 하고, 시원한 바람에 머리가 맑아지는 가을밤이면 어디선가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나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감사하게도 기분 나쁜 기억들은 어느새 다 잊혀지고 그리움만 피어난다.
하지만 매년 서울을 다녀오며 이제 한국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역사적 기록을 갈아 치우는 서울의 여름이 상하이 보다 더 더운 것 같고, 가을에 낙엽을 태우는 ‘위험하고 공기 질을 떨어뜨리는 짓’ 따위는 금지된 지 오래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상하이도 매년 겨울이 조금씩 더 추워지는 듯하고 여름은 예년에 비해 조금씩은 덜 더워지는 듯하다. 매년 기후가 전과 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중에 매 계절 빠짐없이 들리는 기상이변 뉴스를 보면 남 일 같지 않고 나에게도 언젠가 닥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오지도 않은 미래가 걱정되기도 한다.
그에 더해 요즘 세계 이곳 저곳에서 전해지는 뉴스를 보자면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일들이 이해할 틈도 없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다 보니 무엇을 예측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수시로 막막해진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인 일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다 보니 불안증만 더 깊어질 것 같은 찰나에 대한에 그 이름에 꼭 맞게 찾아온 ‘큰 추위’가 나는 싫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만나기 힘든 영하의 날씨였지만, 오기로 약속한 손님이 다녀 간 듯 자연스럽게 잘 받아들였다. 한겨울 추위가 반갑기는 아마도 내 인생 처음이지 않았나 싶고 이만한 일에 반가워하는 내가 나 스스로도 과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언제든지 변덕을 부릴 수 있는 날씨가 예상을 배신하지 않았으니 감사한 일 아닌가.
대한을 알게 된 김에 달력을 넘기며 다음 절기는 무엇인가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바로 입춘 立春이다! 밤이 깊으면 곧 새벽이라더니, 자연의 변화는 늘 이렇게 극적이다. 아직도 한겨울이니 딴 생각 말라는 듯이 추위를 한가득 매섭게 몰아치더니 이제 곧 봄이 도착하니 준비하라는 식이다. 이제 몇 밤만 자고 나면 입춘이다. 이번 절기에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 이름값 제대로 하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고대하며 봄맞이 준비를 해야겠다.
수다쟁이(kijihe202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