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신나서. 너무 신나서 노트북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날아다녔다. 문서에 마침표를 찍고 잔뜩 집중했던 미간을 풀었다. 며칠을 붙들고 있었는데도 지치지 않았다. 대체 얼마큼의 체력을 끌어다 쏟아 부은 것일까. 아마 20년 전 열정까지 소환됐던 것 같다.
얼마 못 가 이 일은 엎어졌다.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있어 더 진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정확히는 자발적으로 손을 떼고 쿨한 퇴장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다 쳐도 밤의 고요에서 빛나는 진심을 갈아 넣던 날들이 떠올라 쓸쓸함이 밀려왔다. 총 맞은 것처럼 가슴에 구멍이 났나, 무지 허무했다.
살다 보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투성이라는 묵은 말로 위로해 본다. 사실 마음 회복력 짱짱하던 젊은 시절에도 이런 일은 수두룩하게 겪지 않았나.
윗선의 갈등으로 사내 프로젝트팀에서 진행하던 일이 중단된 적이 있다. 결과물을 내놓으라며 밤낮으로 못살게 굴더니, 강제 휴가령이 내려졌다. 승인이 허가될 때까지 적어도 일주일은 쉬라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새어 나오는 한숨이 회의실 공기를 휘감았다. 침묵을 깬 것은 술이나 마시러 가자는 팀장의 낮은 목소리였다. 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짐을 정리하고 줄줄이 빠져나갔다. 공기청정기 같은 리더십이로군.

나는 줄을 이탈해 자리로 돌아갔다. 노트북을 켜고 가장 빨리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검색했다. 클릭 몇 번으로 비행시간과 4박 5일 동안 지낼 호텔이 정해졌다. 이것이 나의 첫 솔로 여행이었다. 그 뒤로 틈만 나면 바람처럼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마음을 회복하는데 그만한 처방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소심쟁이 I형 인간으로 살고 있지만 그땐 친화적 E형 인간이었다. 혼자 여행 중인 유쾌한 떠돌이가 신기했는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자석처럼 착착 붙어 돌아갈 땐 연락처에 꼭 둘 셋이 추가되었다. 혼자이고 싶었던 여행은 종종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날엔 호텔 옆방을 쓰게 된 모녀가 나를 방에 초대해 위스키를 마셨다. 술을 싫어하는 딸 때문에 챙겨온 위스키를 개봉도 못하다가 나를 만나 위스키의 밤이 열린 것이다. 처음 보는 이모님과 건배를 스무 번은 한 것 같다. 이모님은 본인 아들이 배우 원빈을 닮았다며 한국에 돌아가면 소개팅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20대 초반이었다) 보여준 가족사진에 원빈은 없었다.
어쨌든지 간에.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계획을 세워 떠나도 방향을 잃곤 한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낯선 곳에서 내내 따라다니던 바람 냄새라든가 만난 사람이든 만든 추억이든 자동 저장된 기억들이 헛헛했던 마음을 채워준다는 것.
며칠 전 엎어진 일을 떨쳐낼 겸 이번에도 짐을 꾸렸다. 혼자 하는 여행은 아니지만 빈틈없이 새로운 기억을 쌓았다. 며칠 끙끙 앓을 줄 알았는데 쉽게 달래지더라. 나이가 성숙해지면서 마음을 털털하게 쓰는 법을 터득한 것일까.
허무함을 달랬으니 숨을 고른다. 다시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다소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운배(tj_jeong030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