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콘텐츠가 세계 시장을 휩쓰는 동안, 그 이면에선 문화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허점이 커지고 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공식 기념품 브랜드 ‘뮷즈(MU:DS)’가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를 무단 복제한 중국산 ‘짝퉁 뮷즈’가 온라인몰에서 버젓이 판매되며 K-컬처 산업의 취약한 보호 구조가 드러난 것이다. 이 문제는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집중적으로 거론되며 “성장은 빠르지만, 보호는 느리다”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없어서 못 파는’ 뮷즈, 중국에선 10분의 1 가격 복제품
국립중앙박물관의 공식 굿즈 브랜드 ‘뮷즈(MU:DS)’는 단청 키보드, 까치호랑이 배지, 흑자 달항아리 인센스 세트 등 한국 전통 문양을 현대 디자인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지난 2022년 선보인 이후, ‘전통이 곧 디자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새로운 문화 소비 트렌드를 만들었다.
[사진= 뮷즈 짝퉁 비교 자료(출처: 네이버)]
특히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캐릭터 ‘더피’를 닮은 ‘까치호랑이 배지’는 출시 열 차례 만에 모두 완판되며 내년 초까지 구매가 어려운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누적 매출은 217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중국 온라인몰에서는 정품 디자인을 베낀 복제품이 대량 유통되고 있었다. 알리익스프레스 등에서 판매 중인 단청 키보드는 3만 원대, 까치호랑이 배지는 1천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정품의 10분의 1 수준이다. 겉모양은 비슷하지만, 자판에는 한글 대신에 한자가 새겨져 있고, 도색 품질도 조악하다. 소비자들은 “외국인들은 정품과 짝퉁을 구별하기 어렵다”라며 “이런 식으로 가짜가 퍼지면 한국 문화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라고 우려하는 반응을 보인다.
국감장에 등장한 ‘짝퉁 키보드’… “IP 보호는 콘텐츠 산업의 기본”
10월 14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최근 사회적 관심을 끈 ‘짝퉁 뮷즈’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이날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제작한 정품 단청 키보드와 중국 온라인몰에서 판매 중인 복제품을 나란히 제시하며 “국내 중소업체와 작가들이 어렵게 만든 디자인이 해외 플랫폼을 통해 무단으로 복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 의원은 “문체부가 수백억 원을 들여 저작권 보호 기관을 운영하고도 실질적인 보호 조치에는 한계가 있다”며 “제작업체들은 정부의 지원 제도나 신고 절차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식재산권(IP) 보호는 콘텐츠 산업의 기본”이라고 강조하며 “특히 전통을 활용한 콘텐츠는 반드시 IP화해 보호하는 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질의는 ‘K-컬처’ 확산 속에서 국내 문화 브랜드의 지식재산권 관리 체계가 여전히 미비하다는 점을 드러낸 사례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뮷즈’와 같은 문화상품의 경우 대부분이 중소 디자인업체나 개인 작가 중심으로 제작돼 해외 복제나 유통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성장은 빠르지만 보호는 느리다”… 공허한 ‘K-컬처 300조’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뮷즈 로고(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정부는 2030년까지 문화산업 규모를 300조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K-컬처 300조 비전’을 내세우고 있다. 콘텐츠·예술·관광·스포츠를 핵심 산업으로 육성해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국감에서는 이 비전이 “성장만 있고 보호는 없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조성된 K-컬처 펀드 2조 7천억 원 중 절반 이상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남아 있다”며 “성과가 없는 예산 확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했다. 양문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연예기획사 관리나 저작권 통계조차 부실한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이번 ‘뮷즈’ 사태를 “보호 장치 없이 성장만 앞서는 K-컬처의 현주소”로 다. 문화산업 관계자는 “지금의 IP 보호 수준으로는 새로운 문화 브랜드가 해외로 나갈 때마다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며 “창작자 중심의 보호 시스템과 국제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뮷즈 대표 IP(출처: 네이버)]
배현진 의원은 “수십 개국에서 쏟아지는 짝퉁을 정부가 전부 단속하기는 어렵다”며 “결국 소비자가 ‘진짜를 찾게 만드는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품의 품질과 스토리, 그리고 공공 브랜드 관리가 K-컬처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란 의미다.
국감장의 단청 키보드 두 대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하나는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난 정품, 다른 하나는 공장에서 찍혀 나온 복제품이었다. 그 두 개의 키보드가 보여준 건 한국 문화산업의 자부심과 동시에 그 기반을 지켜내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K-컬처가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속도가 아니라 그 콘텐츠를 ‘지켜내는 힘’이다. 문화의 크기보다, 그 가치를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느냐 그것이 앞으로 한국 문화정책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이다.
학생기자 김하연(저장대 미디어커뮤케이션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