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아기도 막걸리 한잔할래?”
시아버지는 냉장고에서 꺼낸 막걸리를 머그잔에 따르시면서 물었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시댁에서 새아기이다.
“네, 저도 한잔 마시죠.”
막걸리 한 컵에 소주 한 잔과 요구르트 반 병 정도를 넣고 잘 저은, 시아버지만의 황금비율 막걸리 칵테일이 만들어졌다. 오후 2시, 시아버지와 나는 소파에 앉아 막걸리 칵테일을 홀짝이며 그동안의 소식을 두런두런 나눈다. 아빠와 버릇없는 막내딸의 대화인가 싶을 정도로 격의 없다.
시아버지는 평생 술을 드셨다. 젊으셨을 때는 매일 과음을 하셨고, 나이가 드셔서는 반주라도 꾸준히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아흔이 되셨어도 칠십 대로 보이실 정도로 건강하시다. 시댁 식구들은 시아버지를 제외하고,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이 없다. 20년 전, 새로 맞은 며느리가 시아버지께서 예의상 건넨 술잔을 주저 없이 받아서 쭉 들이키는 순간, 시어머니는 이제는 며느리 술 시중까지 들어야 하는 본인의 운명을 감지하셨는지 매우 당혹스럽고 씁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 후 20년 동안, 시아버지와 나는 시어머니의 못마땅해하시는 눈초리를 피해 가며 시댁에서 유일한 반주 메이트로 돈독하게 지내고 있다.
지난주, 시아버지가 아흔 번째 생신을 맞으셨다. 연세가 드시니 매해 생신이 특별하지만, 아흔 번째 생신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장녀와 장남도 아버지 생신 모임을 위해 귀국했고, 막내 아들네인 우리도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 다녀왔다. 소공동에 있는 모 호텔의 근사한 중식당에서 친지분들 스무 분을 초대해 식사했다. 이날을 위해 시어머니는 난생처음 손톱에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르셨고, 아침 일찍 미용실에 가셔서 메이크업과 헤어 드라이를 하셨다. 건강이 부쩍 안 좋아지셔서 거동도 불편하신 시어머니께서 이날을 위해 모든 신경과 에너지를 다 쏟으셨다. 시아버지도 아주 오랜만에 양복을 입으시고 멋진 넥타이까지 매셨다. 평소 편한 옷차림의 두 분만 뵙다가 한껏 꾸미신 모습을 보니 영화배우 부부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두 분이 함께 자리하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날 처음 뵙는 친지분들도 여러 사람이 계셨다. 결혼하고 줄곧 외국에서 살다 보니 챙기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고, 처음 듣는 이야기들도 많았다.
시아버지는 시골 마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치신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학교 조회 시간에 마이크로 “1등 OOO”하고 부르면, 그 소리가 마을 전체에 다 들렸다고 했다. 똑똑한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학업을 포기한 고모들의 자랑이었다고 했다. 다들 인근 공고나 농고로 진학할 때, 시아버지는 홀로 상경을 해서 명문고와 서울대에 입학하셨다. 그 후 사업 실패를 여러 번 하시면서 인생이 평탄치는 않으셨으나, 자녀들은 잘 성장해서 제각각 자신들의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성실하게 살고 있다. 단지 이 자녀들이 모두 부모와 멀리 떨어져 외국에 있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기는 했다. 시어머니께서 앓아누우실 때마다 “자식들이 아무리 잘 났어도 내 품 안에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라고 하시던 이모님들의 탄식도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이날, 아버지의 구순 생신을 위해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온 자식들과 손주들을 한 명 한 명씩 소개하시는 아버님은 정말 행복해 보이셨다. 게다가 자식들이 비용 아끼지 않고 준비한 멋진 장소와 고급스러운 음식들, 손님들을 위한 선물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서 준비한 그 시간은 그간의 빈자리를 조금은 채웠을 것이다.
다시 상하이로 돌아오는 길, 시부모님은 고맙고 수고 많이 했다고 내 손을 잡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당연한 것을 했을 뿐인데도 늘 이렇게 고마워하시는 분들이시다.
아버님이 건강을 유지하시면서 오래도록 사셨으면 좋겠다.
아, 여름에 한국에 가면 아버님표 막걸리 칵테일에 얼음도 잔뜩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올리브 나무(littlepool@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