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원저우박물관: 패총에서 청자까지… 원저우에서 읽는 선사와 현대의 흔적
여름방학을 맞이해 화동지역의 산 많고 물 좋은 도시들을 방문하고자 저장성 끝자락에 위치한 원저우 시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특히나 원저우 시는 그 지형적 특징과 문화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준다.
상하이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원저우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산이었다. 원저우는 해안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산세가 가파르고 계곡이 깊은 산악지대와 아열대의 풍경으로 나를 맞이했다. 원저우박물관에서의 답사는 바로 이러한 원저우 지역 사람들이 독특한 지형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삶을 일구고 적응해 왔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사진=원저우박물관 전시실 입구 전경]
옹기종기 아이들이 전시장 입구부터 모여 난리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게 화석은 집게가 잘려 한눈에 알아보기는 어려웠지만 생김새가 지금 우리가 자주 먹는 게 요리 속 그것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선사시대의 식문화에 관해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패총이다. 선사시대 인류는 해안가에서 쉽게 채집할 수 있는 조개를 먹고 난 후 껍데기를 한곳에 쌓아 두었는데, 이를 조개무덤, 패총으로 부른다.
오늘날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이 ‘음식물 쓰레기더미’를 통해 인류의 이동 경로와 생활 방식을 추적한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조리방식의 발전 또한 같은 재료를 반복해서 먹을 때 발생하는 지루함을 방지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진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다양한 조리 방식의 탄생은 곧 인류가 식재료를 다루는 창의력의 결과이자, 식문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첫걸음이 되었던 셈이다.
[사진=중생대 꽃게 화석]
원저우에서 만난 고인돌
오늘 저녁엔 뭐든 원저우에서 인기 있는 꽃게요리를 먹겠다고 다짐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친숙한 대한민국 지도와 강화 고인돌 사진이 전시된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이 지도와 사진들은 원저우에서 발견된 고인돌이 동아시아 거석문화의 하나라는 점을 알려주고자 기획된 것이었다.
원저우 시는 70퍼센트 이상이 산지와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와도 유사한데, 산꼭대기에 큼직한 바위가 그대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경관은 그야말로 기암괴석의 향연이라 부를만 했다. 이러한 웅장한 바위에 둘러싸여 살았던 옛 권력자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권위를 바위의 견고함과 영속성에 의탁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원저우 지역에서 큰 돌을 이용하여 고인돌 같은 거석문화가 발달한 것도, 중국 문인들의 시 속에 등장하는 신선이 사는 바다 위의 옌탕산(雁荡山) 같은 지형적 특징이 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진=원저우에서 발견된 고인돌 모형]
산과 물이 빚어낸 원저우의 청자 이야기
중국은 드넓은 땅만큼이나 다양한 개성과 역사를 품은 도자기들을 지역별로 만들어 내 왔다. 그 가운데서도 원저우 지역를 지칭하는 구요(瓯窑) 도자기는 오랜 세월 동안 깊은 명성을 유지해 온 곳이다. 특히 그 아름다운 빛깔과 견고함은 산속 깊이 자리한 광물들이 오랜 시간의 침식 작용을 거치면서 작고 고운 흙으로 빚어진 데서 비롯된다. 기암괴석의 웅장하고 단단한 기운은 윤택한 물길을 따라 흘러내려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빛깔 고운 청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원저우 도자기의 형태는 단아하며, 그 빛깔은 차분하고 고급스럽다. 여기에 더해 오월 지역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감각까지 더해지니 도자기의 기형마저도 생기 넘치는 미감을 품게 된 것이다.
[사진=당나라 때 제작된 구요 도자기]
목공, 천년의 세월을 잇는 장인의 기술
원저우 도자기로 만든 당삼채로 유물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며 다가선 조각상 앞에 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표면이 너무 거친 것이 도자기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뭘로 이 당나라 여인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단 말인가. 자세히 살펴보니 목재에 채색을 더한 조각상이었다. 나무로 정교하게 만들어낸 당나라 여인의 표정과 기품, 옷 주름의 세부적 묘사가 대단했다. 무른 흙을 빗어 만들거나 틀에 찰흙처럼 찍어서 만들어 내는 대개의 당나라 도용과 다르게, 나무는 한번 빗나가는 조각 칼의 움직임에도 흔적이 남는 댓가가 따른다.

[사진=당나라 여인 목재 조각상]
이러한 목재 장식품은 목공기술이 뛰어난 기술자들이 만든 것으로, 이러한 기술자를 배양하려면 그만큼 목공품을 사고파는 시장과 이를 숙련할 수 있는 분업 시스템이 그 뒤에 자리하고 있음을 상상하게 한다. 실제 이어지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칠기 작품들을 보면서 천년을 이어온 목공 기술의 수준을 느낄 수 있었다. 원저우는 해양 도시로 배를 만드는 조선업이 발달해 원나라 때는 현재 출입국사무소와 같은 기능까지 담당할 정도였다. 습윤한 기후와 해양 환경에서 목재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해 발달한 칠기 기술은 선박 건조술과 함께 원저우만의 물질문화를 구성해왔을 것이다.
[사진= 흑칠이 더해진 꽃잎 형태의 칠기잔]
[사진=원저우 안당산 전경]
박물관을 나서며
원저우의 산과 바다는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다. 거대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싼 웅장한 산악지대와 복잡하게 교차하는 해안과 강줄기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선사시대의 패총에서 시작해 거석문화, 청자의 아름다움을 담은 자기, 그리고 정교한 목공과 칠기 기술까지 모두 지형의 영향을 깊이 받아 발전한 것이다.
원저우박물관에서의 하루는 자연환경이 인간의 삶과 문화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원저우박물관을 방문한다면 피서를 위해 떠난 여행이, 뜻밖에도 자연과 인간이 맺어온 긴밀한 관계를 발견하는 의미 있는 경험으로 기억될 것이다.
•주소: 浙江省温州市鹿城区市府路491号
•시간: 09:00-17:00, 월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예약 불필요, 여권 지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