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모빌리티·헬스케어로 본 미래 산업의 방향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혁신 전시회로, 전자·IT를 넘어 인공지능, 모빌리티, 헬스케어, 로보틱스, 에너지 등 미래 산업 전반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주는 글로벌 무대다. 전 세계 기업과 스타트업, 정책 결정자들이 참여해 신기술과 신제품을 공개하고, 향후 산업과 사회의 변화를 가늠하는 중요한 전시회다.
올해 ‘CES 2026’ 는 지난 1월 7일부터 10일까지 3박 4일간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됐다. 나는 재학 중인 서울대학교의 ‘글로벌 전공탐색 현장학습’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10박 11일간의 미국 일정을 학교지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올해 CES를 관통하는 핵심 트렌드는 ‘H.O.R.S.E’로 요약된다. 이는 헬스테크(Healthtech), 개방형 생태계(Open Ecosystem), 로봇(Robotics), 자율주행(Self-driving), 에너지(Energy)의 약자로, 현장에서 목격한 주요 기술들 역시 이 다섯 가지 흐름 안에서 구체화되고 있었다.
백덤블링부터 빨래, 교감까지… 일상 파고든 로봇의 진화

[사진=현대자동차(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전시장에서 가장 큰 인파가 몰린 곳은 단연 로봇 기업들의 부스였다. 특히 현대자동차(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선보인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기존 모델 대비 월등히 향상된 구동 능력을 시연했다. 로봇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매우 매끄러운 동작을 선보였다. 심지어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고 백덤블링까지 해내는 모습은 로봇의 운동 능력이 인간의 신체 능력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로봇의 움직임에서 흔히 떠올리게 되는 삐걱거림이나 기계적인 둔탁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현대자동차의 사족보행 로봇인 스팟이 한국 보이그룹 코르티스의 ‘Go’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은 관람객들에게 큰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이처럼 로봇의 움직임이 고도화되고 인간과의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기업들은 로봇들의 안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다.
LG 전자의 빨래 개는 로봇 ‘클로이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로봇의 센서를 통해 옷의 모양을 분석하고 섬세하게 접어내는 기술력은 인상적이었다. 정확한 동작을 위해 다소 신중한 속도로 작동했지만, 가장 번거로운 가사 노동인 빨래 개기를 로봇이 대신해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이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기숙사에서 빨래를 한 후 개는 것이 늘 귀찮았더 나에게도 빨래 개는 로봇의 등장은 누구보다 반가웠고, 기숙사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술, 장애의 장벽을 낮추다
이번 CES에서 주목받은 또 다른 키워드는 ‘접근성(Accessibility)’이었다. ‘글로벌 전공탐색 현장학습’ 프로그램은 미국 견학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팀을 이뤄 창업 아이디어를 구상해야 했다. 내가 속한 팀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행 보조 앱을 설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접근성’ 관련 기술들을 특히 유심히 살펴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현재 우리 팀이 개발 중인 프로덕트와 문제의식은 유사하지만, 기술적 완성도와 구현 방식 면에서 훨씬 앞서 있는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 스타트업 ‘닷루멘(.lumen)’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헤드셋 형태의 보조 기기를 선보여 큰 주목을 받았다. 부스에서 직원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이 제품이 시각장애인 가정에서 자란 창업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착용자의 이마에 위치한 9개의 진동점이 방향을 안내하는 방식은 설명을 듣는 순간보다 실제로 체험했을 때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우회전이 필요한 순간 오른쪽 진동점이 울리는 단순한 구조만으로도, 별도의 학습 없이 보행이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체험을 마친 뒤에는 기술적 완성도와는 다른 차원의 고민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시각장애인 역시 사회 속에서 가능한 한 ‘일반인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이처럼 큰 헤드셋 형태의 기기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또, 시각장애인 사용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을 시각장애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따라서 접근성 기술이 단순히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의 정체성과 감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실감했다.
기술, ‘공간’을 재정의하다

[사진= 아마존의 자회사 ‘죽스(Zoox)’의 완전 자율형 전기 로보택시]
모빌리티 분야에서는 웨이모(Waymo)와 죽스(Zoox) 등 자율주행 선도 기업들이 실제 도심 주행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층 안정된 주행 기술을 선보였다. 특히 아마존의 자율주행차 죽스는 박스 형태의 독특한 디자인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잡았다. 운전석과 조수석 없이 승객들이 마주 보고 앉는 객차 형태의 좌석 배치가 특징이었다. 죽스 관계자는 차량이 앞뒤 구분 없이 양방향으로 주행 가능해 좁은 도로에서도 유턴 없이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시연하며 기술의 효율성을 부각했다. 차량 내부에 직접 탑승해 체험할 수 있었으나, 대기 줄이 매우 길어서 체험하지 못했다.
생활 파고든 이색 스타트업
가장 긴 대기 줄이 있었던 주인공은 의외로 평범해 보이는 막대사탕, ‘롤리팝 스타(Lollipop Star)’였다. 이 제품은 사탕을 입에 무는 순간 골전도 기술을 통해 두개골로 음악이 전해지는 방식을 적용했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입안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는 독특한 경험에 체험객들은 놀라움을 자아냈다.
주방과 뷰티 영역에서도 실생활 밀착형 혁신이 돋보였다. ‘시애틀 울트라소닉스’는 초음파 진동을 이용해 힘을 주지 않고도 딱딱한 바게트를 두부처럼 써는 식칼을 선보였고, ‘아이폴리시(iPolish)’는 앱 조작만으로 그날의 기분에 맞춰 네일 컬러를 바꾸는 기술로 젊은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기술, 경이로움과 생활 그 사이
기술은 이제 연구실을 벗어나 우리의 거실로, 주방으로, 심지어 입안으로 들어왔다. 이번 CES에 직접 참가하며 수많은 기술을 마주한 경험은 그동안 막연히 상상해 왔던 ‘미래 기술’이 이미 현재의 언어로 작동하고 있음을 체감하게 했다. 전시장을 걷는 동안 인상 깊었던 점은 기술의 성능 자체보다도, 그것이 누구를 위해, 어떤 일상을 바꾸기 위해 설계되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접근성과 로봇 기술을 중심으로 전시를 둘러보며 기술의 발전 방향이 단순한 혁신을 넘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세심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로 이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물론 쏟아지는 유사 제품들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일과, 기술과 안전하게 공존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CES는 나에게 기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묻는 자리였다. 미래의 기술을 소비하게 될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언젠가는 그 기술을 설계하는 위치에 서고 싶은 학생으로서, 이번 경험은 기술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분명하게 바꾸어 놓았다.
25기 학생기자 김리흔(서울대 자유전공학부 25학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