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 민주화운동을 처음으로 적나라하게 인식하게 된 계기는 2012년 영화 <26년>을 보고 나서였다.
영화는 시작부터 광주항쟁 당시 처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믿기지 않는 사실 앞에서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현실이라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나는 민주화운동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운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이러한 비극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던 때, 집에는 둘째 딸의 학교 수업을 위해 사두었던 <소년이 온다>가 있었다. ‘노벨상을 받은 한국 작가의 책’이라는 생각에, 나는 딸보다 먼저 책을 펼쳤고 단 하루 만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12년 전 영화로 보았던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상보다 글이 더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단지 한강 작가의 섬세하고 예민한 문체 때문만이 아니었다. 문장을 따라가며 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상상, 그 강렬한 이미지 때문이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몸서리가 쳐졌으며, 슬픔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작가는 글을 쓰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여러 번 멈추기를 반복했다고 했는데, 그 고통이 고스란히 독자에게도 전해졌다.
특히 4장 「쇠와 피」의 고문 장면은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깊게 다가온 것은 인간이 인간을 철저히 모멸시키는 그 잔혹함이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스스로 짐승처럼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그것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고문이 아닐까.
그 순간 깨달았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때로는 그 어떤 짐승보다 더 잔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았다.
책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그 공포를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바로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였다.
그날 나는 한국에 있었고, 서울 한복판에서 그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순간 몸이 떨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머리가 멍해졌다.
책과 영화로 간접 경험했던 공포가 현실과 겹쳐지면서, 그 충격은 더욱 증폭되었다.
아마 그날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다행히 계엄령은 곧 철회되었고, 그 결정을 내린 권력은 지금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둘째 딸은 계엄령 선포 직전 <소년이 온다>를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처럼 다가오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이러니하게도 한편으로 안도했다.
아무리 아픈 역사라도, 그것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의 이 질문은 더 이상 문장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이들의 고통이, 예술을 통해 다시 살아 숨 쉬며 우리 앞에 나타났고, 우리는 그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반복될 수 있었던 비극을 막아낼 수 있었다.
나는 그날을 지켜낸 시민들,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행동한 사람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그리고 그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게 만들어준 작가와 예술가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은명주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