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과 사회
“언니! 추천해 주고 싶은 책 있어요?”라는 물음에 30년 지기 지인이 권해 준 책이다. 힘들어할 때 도움이 되었다는 말과 함께 제목이 주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지음, 동아시아)의 저자는 조금은 생소한 사회 역학을 연구하는 의사, 정의로운 건강을 얘기하는 의사다. 책 표지는 마치 어떤 학문의 개론서 같지만, 제목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저자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큼 사람들이 아프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고,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젊은 학자에게 감사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소명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빛과 소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의학지에 실린 다양한 논문 내용과 연구를 어떻게 이렇게 쉬운 언어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와 주위를 바라보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오롯이 마음에 와닿아 참으로 가슴이 훈훈해지는 시간이었다.
이 책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사회 역학에 관한 것이다. 사회 문제를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한 학자로서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1장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2장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3장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4장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적 시간이 새겨집니다.’
책 속 문장들이 천천히 걸어오는데 먹먹해지기도 하고 아리기도 하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했다. 저자는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당신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라고 묻는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줄 수 있다는 확신,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함께 해줄 것이라는 확신은 기꺼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살아가다 보면 상대편뿐만 아니라 우리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로부터도 상처받는 일이 생긴다고. 그리고 그것이 더 아플 수도 있다고.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경험으로 간직하라고.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다고 말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아픔을 마주한다. 때로는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한다. 아프면 힘들다고 표현해야 한다. 속 시원하게 한바탕 울고 살아가면 되지 않는가. 아픔을 마주할 용기가 없으면 아픔이 길이 될 수 있을까?
순간순간 울컥해지는 요즘, 그래도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더 나은 세상, 정의로운 건강이 우리 사회에 정착되기를 소망한다.
김희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