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 있는 손녀가 영상통화를 하다 말고 내가 읽어주던 그림책을 가져온다. 재우기 전에 잠시 얼굴만 보여주려던 딸은 할 수 없이 손녀에게 책을 읽어준다. “안돼” “꾹꾹” 손녀는 그 페이지에 있는 글을 읽기라도 하듯이 암송한다. 마치 제 엄마 어릴 때 같다.
딸은 내가 그림책을 읽어주면 맞은편에 앉아 그림책을 거꾸로 놓은 채로 곧잘 외워서 읊어대곤 했다. 4대가 함께 사는 집 맏며느리로 시집살이하느라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우리 방에 올라오면 눈꺼풀이 한껏 무거워져 있는데 딸은 그림책을 한 아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엄마, 책 보까 주세요.”
“뭐? 책을 볶아달라고?”
생각해 보니 “우리 책 보까(볼까?)?” 하고 딸에게 묻곤 했었는데, 딸은 책 “보까?”에 청유형 어미를 제멋대로 붙인 것이었다. 남들은 한 권이라도 더 읽히려고 애쓸 때, 나는 딸이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책들을 한 권이라도 줄이고 빨리 가사와 육아로부터 퇴근하고 싶어서 잔머리를 굴려야 했다. 돌아보면 참 행복한 시간이었는데 나는 그 시간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딸은 그나마 첫 아이라 끼고 앉아 책을 많이 읽어줬던 것 같은데 둘째 때는 진득이 읽어준 기억도 별로 없다.
그림책의 전설적인 편집자이자 비평가인 마쓰이 다다시(松居直, 1926~2022)는 그의 대표작 <어린이와 그림책>에서 “그림책은 어린이가 스스로 읽는 책이 아니라, 어른이 아이에게 읽어주는 책”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귀로 듣는 언어, 눈으로 보는 세계
많은 부모가 아이가 글자를 깨치는 순간 ‘읽어주기’의 퇴근을 선언한다. 하지만 마쓰이 다다시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도 부모가 책을 읽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가 스스로 글자를 읽기 시작하면, 아이의 뇌는 ‘해독’이라는 고된 노동에 집중하느라 정작 그림 속에 담긴 풍부한 예술 세계와 이야기의 맥락을 놓치기 때문이다.
부모의 목소리로 듣는 이야기는 아이에게 ‘귀로 듣는 언어’의 풍요로움을 선물한다. 어른의 따뜻한 숨결과 리듬이 담긴 목소리는 아이의 정서적 토양이 된다. 그림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어른과 아이가 같은 세계를 동시에 바라보며 마음을 나누는 ‘공감의 무대’인 셈이다.
공부가 아닌 ‘즐거움’의 기억, 평생의 자산이 되다
우리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지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는 시간이 즐겁다’는 원초적인 기억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어린 시절 부모의 품에 안겨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포근함과 재미는 독서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결정짓는다.
공부가 아닌 ‘놀이’로 시작된 독서 습관은 아이가 성장하며 마주할 수많은 파도 앞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평생의 자산’이 된다. 스스로 책을 펼쳐 드는 아이는 결코 외롭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사유의 힘을 잃지 않는다. 이 자산은 부모가 물려줄 수 있는 그 어떤 경제적 가치보다 강력하다.
부모의 목소리, 모국어와 문화가 흐르는 통로
상하이라는 글로벌한 환경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정체성’ 그 자체다. 부모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우리말 그림책은 우리 고유의 정서와 문화를 전승하는 가장 아름다운 통로가 된다.
그림책 속 우리말의 리듬과 단어 사이에 스며든 한국적인 가치와 무형의 자산은 부모의 목소리를 타고 아이의 심장에 각인된다. 타국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모국어라는 튼튼한 뿌리를 내려주는 것, 그것은 부모만이 해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문화적 유산이다.
AI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책’인가
인공지능(AI)이 책 내용을 순식간에 요약하고 분석해주는 시대다. 정보가 필요하다면 굳이 두꺼운 책을 펼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정보’가 아닌 ‘사유의 과정’에 있다. AI는 결론을 내어주지만, 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을 읽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주인공의 고통에 공감하며 눈물 흘리는 과정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귀한 경험이다. 요약된 정보만으로 얻은 지식은 파편에 불과하지만, 한 권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며 겪는 인내와 통찰은 아이의 내면을 깊고 풍요롭게 가꾸어 준다.
졸음을 참아가며 딸에게 책을 ‘볶아주던’ 그 피곤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딸이 다시 제 아이에게 사랑을 전하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많이 읽어주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횟수나 시간 보다도 “함께 한 기억”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