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재원 시절, 와이탄(外灘)의 밤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그 생경함이 떠오른다. 2006년, 처음 상하이에 발을 디뎠을 때 자전거 물결이 넘실대던 거리가 어느덧 전기차와 드론의 각축장이 되더니,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능형 유령’들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AI)이다. 미국이 챗GPT로 세상을 놀라게 할 때, 중국은 조용히 ‘돈 되는 AI’를 깎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구글과 오픈AI만 바라보며 만리방화벽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글로벌 시장에서 펄펄 나는 AI 툴들이 중국 땅만 밟으면 ‘먹통’이 되는 현실, 답답함을 넘어 비즈니스 기회마저 놓치고 있는 건 아닌가.
중국의 AI 기술은 이제 ‘발전’을 넘어 ‘생활’이 됐다. 2026년 현재, 중국 내 AI 관련 기업은 2만 5천 개를 넘어섰고, 시장 규모는 250조 원에 육박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AI는 서구권의 그것처럼 ‘철학적 고뇌’를 하지 않는다. 대신 “어떻게 하면 물건을 더 잘 팔고, 어떻게 하면 회의록을 빨리 정리할까”라는 지극히 세속적이고 실용적인 고민에 특화되어 있다. 중국 시장에 진출한 우리 중소기업들이 반드시 챙겨야 할 ‘중국산 AI 툴’ 세 가지를 꼽아본다.
첫째, 알리바바의 ‘통이치엔원(通義千問)’은 중국 비즈니스의 필수 앱인 ‘딩딩(DingTalk)’과 한 몸처럼 움직인다. 회의록 자동 요약, 비즈니스 이메일 작성, 문서 번역 및 교정 등 딩딩 안의 AI 비서는 웬만한 신입 사원보다 눈치가 빠르고 일 처리가 정확하다. 중국어 특유의 비즈니스 수사(修辭)를 기가 막히게 구사하니, 메일 한 통 쓰는 데 진땀 뺄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이 똑똑한 비서는 Qwen(알리바바 클라우드)에서 만날 수 있다.
둘째, 바이두의 ‘어니봇(文心一言)’은 3억 명의 사용자가 매일같이 데이터를 쏟아붓는 덕분에 중국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가장 잘 안다. 챗GPT가 “중국어 좀 하는 외국인”이라면, 어니봇은 “상하이 골목길 사정까지 훤한 토박이”랄까. 이미지와 비디오 생성 능력이 탁월해, 마케팅 비용이 부족한 중소기업에겐 훌륭한 디자이너이자 영상 편집자가 되어준다. 현지 마케팅 콘텐츠 제작, 중국어 슬로건 개발, 시장 트렌드 분석 등 바이두의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영리한 AI는 ERNIE Bot(바이두)에서 경험할 수 있다.
셋째, 텐센트의 ‘훈위안(混元)’은 위챗(WeChat) 생태계에 깊숙이 뿌리박은 고객 응대의 ‘끝판왕’이다. 위챗 미니프로그램(小程序)을 통해 들어오는 고객의 까다로운 질문에 24시간 지치지 않고 대답한다. 24시간 고객 상담 챗봇, 개인화된 마케팅 메시지 발송, 위챗 내 여론 모니터링 등 중국인들의 소통 방식에 최적화된 AI 에이전트가 우리 기업의 CS 팀장이 되어주는 격이다. 텐센트의 훈위안은 Tencent Hunyuan(텐센트 클라우드)에서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다.
물론 비판할 점도 명확하다. 중국 AI는 ‘현지 데이터 환경’이라는 특수성을 지닌다. 글로벌 AI 모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방대한 중국어 데이터와 현지 문화적 맥락을 기반으로 학습되었기에, 때로는 외부 AI가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물을 내놓기도 한다. 이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데이터 폐쇄성’으로 작용하여,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AI 툴만으로는 현지 시장의 미묘한 흐름을 읽어내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전장에서 살아남으려면 그 땅의 숫돌에 갈아낸 칼을 써야 한다.
AI가 제아무리 똑똑해도 상하이 공상국 공무원의 마음까지 읽어주지는 않는다. 결국 ‘관시(關係)’와 ‘현지화’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AI라는 지렛대를 활용하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다. “AI가 밥 먹여주냐”고 묻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중국에선 AI 없으면 밥 주문도 못 하는 세상이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이 ‘똑똑한 유령’들을 동반자 삼아, 거친 중국 시장에서 승전보를 울리길 기대해 본다.
(주)비바 이지원_ 상하이교통대 MBA졸업후 중소벤처기업진흥청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한중 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AI와 로봇이 지배하는 미래 시장에서 인간의 가치를 찾는 창업 전략을 연구 중이다.
상하이저널에 연재되는 AI/IT 분야 칼럼은 2026년 미래 비즈니스의 나침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상하이·화동 한국IT기업협의회는 급변하는 중국 IT 기술 트렌드를 분석하고 한국기업과 교민 사회에 실질적인 비즈니스 통찰력을 제공해 한중 기술 협력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