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내년 중국 설 명절(춘절) 이전 중국에 인공지능(AI) 칩 H200을 출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실제 공급 여부와 시점은 중국 정부의 승인에 달려 있어 불확실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관찰자망(观察者网)은 로이터 통신을 인용해 복수의 익명 소식통에 의하면 엔비디아가 중국 고객사에 2026년 2월 중순, 춘절 연휴 이전 H200 칩을 인도할 계획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계획이 현실화될 경우, 이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달 초 “엔비디아의 H200 칩 대중 수출을 허용하되 25%의 수수료를 부과한다”고 밝힌 이후 첫 출하가 된다.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출하는 기존 재고를 활용한 물량으로, 규모는 칩 모듈 기준 5000~1만 세트, 개별 칩으로는 약 4만~8만 개에 이를 전망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엔비디아가 H200 추가 생산 계획도 중국 고객들에게 설명했으며, 2026년 2분기부터 관련 증설 물량 주문 창구를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모든 일정은 중국 당국의 승인 여부에 따라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중국 측은 H200 칩 구매에 대해 공식 승인한 사례가 없는 상태다. 한 소식통은 “전체 계획의 성사 여부는 전적으로 중국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며 “허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확정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정책 변화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중국에 대한 첨단 AI 칩 수출을 대폭 제한해 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같은 기조를 일부 수정해 H200 수출을 허용했지만, 미 정부가 매출의 25%를 취하는 조건을 달았다. 로이터는 최근 미 행정부가 대중 수출용 H200 칩에 대한 라이선스 신청을 검토하는 심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H200은 엔비디아의 호퍼(Hopper) 계열에 속하는 AI 칩으로, 이미 차세대 블랙웰(Blackwell) 시리즈로 교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AI 산업에서 여전히 핵심적으로 활용되는 제품이다. 다만 엔비디아의 생산 역량이 블랙웰 시리즈와 향후 출시될 루빈(Rubin) 계열에 집중되면서, H200 공급은 점차 빠듯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의 정책 전환 시점이 중국이 자국산 AI 반도체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 시기와 맞물렸다는 점도 주목된다. 중국 내 일부에서는 H200 수입이 허용될 경우, 국산 AI 칩 산업의 성장 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국 싱크탱크 진보연구소는 H200의 성능이 중국 시장 전용으로 설계된 저사양 모델 H20의 약 6배에 달해, 중국 AI 연구기관들이 미국 최고 수준에 근접한 슈퍼컴퓨터 구축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외교부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궈자쿤(郭嘉昆)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일관되게 중·미가 협력을 통해 상호 이익과 공동 번영을 실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출하 계획은 미·중 기술 갈등의 완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실제 집행 여부는 중국의 산업 전략과 정책 판단에 달려 있다”며 “이번 사안이 향후 미·중 반도체 협상의 가늠자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종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