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사신의 발길 머물던 자리에서 “외교 유산 재현”
해상 실크로드 거점 ‘고려사관’ 교민 행정·안전 지원 거점으로 새 역할 확장

저장성 닝보(宁波)의 도심 속 오아시스로 불리는 월호공원(月湖公園). 이곳에는 900여 년 전 고려와 송나라의 찬란했던 교류를 상징하는 역사적 장소인 ‘고려사관(高丽使馆)’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6일 이 유서 깊은 공간에서 우리 민족의 외교 역사를 잇는 뜻깊은 자리가 있었다.
상하이총영사관은 이날 닝보 고려사관 유적지에서 2026년 상반기 ‘찾아가는 총영사관(순회영사)’ 업무를 실시했다. 이번 순회영사는 단순한 행정 서비스를 넘어, 과거 고려 사신들이 머물며 외교 업무를 수행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909년 만에 다시 현대적 의미의 영사 업무가 재개되었다는 점에서 깊은 역사적 울림을 주었다.

고려사관은 1117년 송나라 휘종 황제의 칙령으로 건립된 고려 사절단 전용 복합 공간이다. 당시 ‘명주(明州)’로 불리던 닝보는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고려 개경으로 향하는 최단 항로의 거점이었다. 이곳에 설치된 ‘고려청(高麗廳)’은 오직 고려와의 무역과 행정을 전담하던 유일무이한 기구였으며, 고려청자와 인삼, 송의 비단과 서적이 오가던 국제 교류의 허브였다. 1130년 전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999년 발굴 조사를 통해 마침내 실체가 드러난 이곳은 현재 ‘명주와 고려 교류사 진열실’로 복원되어 우리 선조들의 숨결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최근 닝보한인회 김연호 회장이 이곳의 관리 및 운영 지원을 맡게 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의가 있다. 909년 전 송나라가 설치했던 ‘고려청’의 역사가 깃든 이곳에서 정부의 영사 업무가 재개되었고 민간 차원에서 직접 이 터를 보존하고 가꾸어 나가게 된 것은 ‘끊겼던 역사적 의의를 다시 잇는 감동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날 닝보를 찾은 주 상하이 총영사관 관계자들은 순회영사 업무 현장인 진열실 내부를 직접 둘러보며, 과거 고려 사신들의 발자취와 양국의 교류사에 대한 닝보시천일각월호관리관공서 왕바오쉐(王保学), 시위메이(斯玉梅) 부주임의 설명을 깊은 관심 속에 경청했다. 전시된 유물과 옛 터를 살펴본 상하이총영사관 이은진 영사는 “선조들이 외교 무대로 누볐던 역사적 장소에서 오늘날의 교민들을 위한 업무를 다시 수행하게 되어 매우 뜻깊다”라며, 909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과거 고려의 외교 공관에서 현대의 영사 업무가 재개된 것에 대한 벅찬 소회를 밝혔다.

이번 순회영사 활동은 1117년 고려사관 건립 이후 약 9세기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같은 장소에서 우리 국민을 위한 외교 행정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상하이까지 장거리를 이동해야 했던 닝보 인근 교민들은 가까운 고려사관에서 여권 재발급, 공증 등 필요한 업무를 편리하게 처리했다. 현장을 찾은 한 교민은 “우리 역사가 깃든 고려사관에서 영사 업무를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며 관계자들에게 직접 커피를 전달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또한 닝보 한인회 관계자들도 함께 참여하여 교민들의 원활한 업무 처리를 도우며 민관 협력의 모범을 보였다.
영사 업무 종료 후 저녁 시간에는 닝보 노팅엄대학교(UNNC)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 교육 및 간담회가 이어졌다. 주 상하이 총영사관 이은진 영사는 유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며 현지 생활 안전 수칙을 전달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900여년 전 바닷길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던 창이었던 고려사관은 이제 2026년 닝보 교민들의 삶을 보듬는 따뜻한 소통의 창으로 다시금 그 역사적 소명을 이어가고 있다.
글·사진: 닝보한인회 김연호 회장, 이기영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