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일기예보가 자주 틀린다. 기상청도 이상기후는 예측 못한다. 그 와중에 눈에 띈 ‘시대 예보’라는 책. 내일 예보도 틀리는데 시대 예보라니! 빅데이터가 분석한 시대 예보라 해도 기대감은 없었지만 ‘핵 개인’이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 책은 ‘개인’에 온전히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내가 속한 조직과 단체를 위해 개인이 무시되거나 희생을 감내했던 현실과 다른 각도의 접근이 신선했다.
K팝, K드라마, K패션! 난 듣기만 해도 자랑스러운 이 단어 K가 ‘한국’인 줄 알았다. 하지만 ‘K의 의미는 From Korea가 아닌 Made by Korean’이다. K는 공간으로 규정되지 않고 문화이고 사람이다. 한국말 잘 못하는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보며 응원을 외치던 내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정서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K가 확장하고 진화하면서 국가를 넘어 공명할 것을 생각하면 예측 불가한 미래도 희망과 기대감을 준다.
‘나의 세계관이 나의 경계’라는 표현도 신선하다. 요즘은 뉴요커, 파리지앵, 서울러… 이렇게 본인의 정체성을 훨씬 작은 단위에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경계 없이 세계관은 넓어지는데 물리적 공간의 구별 짓기는 세세하게 심화되고 있다. 소속감에 대한 열망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나는 ‘상하이런’이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인천은 나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고, 서울은 큰 인상이 없다. 그리고 14년째 지내는 상하이는 지난 삶의 족적을 품고 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은 상하이런이다.
빅데이터와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AI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코파일럿(부조종사)은 직장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 밤낮으로 비행해도 졸지 않고 퇴근도 하지 않으며 월급도 100달러 밖에 안되는 AI코파일럿은 역대급이다. 일반 직장인도 예외는 아니다. 조직에 불만이 많아 투덜대는 MZ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
AI는 각종 분석과 리서치를 빠르게 도울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나도 필요 없어지면 AI가 해고를 통보하겠지. 웃픈 일이다. AI는 진상 고객을 상대해도 고통받지 않는다. 비 인격이라 더 인격적으로 응대가 가능한 로봇을 우리는 당할 수 없다. 이렇게 잠도 안 자고 화도 안 내고 외국어도 잘하는 AI로봇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심지어 사람에게 지칠 때면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나 홀로 커피 마실 때가 행복하다. 기계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싫어서라는데. AI는 ‘핵개인’에게 필수 동반자다.
가족은 예외인가. 한국인에게 ‘가족’은 철쇄로 묶인 듯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 책은 또 한 번 반전을 제시한다. 핵개인의 시대에 ‘가家’는 있지만 ‘족族’은 사라진단다. 나만 해도 해외에서 14년째, 한국에 있는 가족은 ‘내 아이 봐주는 옆집 언니, 병원 갈 때 통역해 주는 중국인 친구’보다 먼 사이다. 천륜은 사라지고 연대는 남는다. 무섭기도 하고 죄책감도 드는 말이지만 공감은 된다. 효도는 종말을 고하는 듯하고 더 이상 수동태 책임감에 짓눌려 살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시니어’라는 단어는 호감형이다. ‘노인’이라는 표현처럼 다른 세대로 구분짓는 외로움도 없고, ‘어르신’처럼 우대하는 듯 약자 취급하는 묘한 느낌도 없으며, ‘나이 든 삶’에 대한 활동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미 맞이한 핵개인의 시대에 나는 어떻게 연대하여 ‘쪼개지고, 흩어지고, 홀로 서는’ 오늘날 유의미한 핵개인으로서 ‘함께’ 할 것인가. 한 권의 시대 예보를 통해 나의 삶을 재정의하는 시간이 되었다.
최인옥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