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의 청소년 시절, 섬세하게 복원
스물일곱의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된 시인 윤동주. 그의 이름은 ‘국민 시인’이라는 수식어로 익숙하지만, 정작 그가 어떤 소년이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윤동주 서거 80주기를 맞아 창비에서 출간한 청소년소설 <소년 동주>는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운다. 북간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기까지, 시인이 되기 이전 윤동주의 청소년 시절을 섬세하게 복원하며 독자를 그의 성장의 시간으로 이끈다.
이 작품은 윤동주를 위대한 시인으로 기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고민하고 흔들리던 한 소년의 모습으로 그려낸다. 여고생 ‘새봄’이 꿈속에서 윤동주를 만나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은 교과서 속 인물과 오늘의 청소년 사이의 거리를 단숨에 좁힌다. 이 장치를 통해 윤동주와 직접 대화를 나누듯 그의 선택과 고뇌를 따라가게 된다.
우리말을 보듬어 온 작가 정도상이 그려낸 ‘소년 동주’의 내면
작가 정도상은 오랫동안 한국사의 상처와 개인의 삶을 교차해 온 서사적 성취를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남북한 우리말 연구와 겨레말큰사전 편찬에 깊이 관여한 정도상 작가는 <남북한 청소년 말모이>, <남북한 어린이 말모이> 등을 펴냈으며, <찔레꽃>, <낙타>, <마음오를꽃> 등 다수의 소설을 썼다.
그는 윤동주의 시적 정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 밑바탕에 깔린 감정과 갈등을 풀어낸다. 송몽규, 문익환과 나눈 우정과 경쟁, 문학과 신앙, 조국에 대한 고민은 소년 윤동주를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린다. 특히 사촌 형 송몽규와의 관계는 동경과 열등감, 연대가 교차하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그려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내일은 없다”, 어린 마음의 질문
윤동주의 이러한 내면은 그가 열일곱 살이던 1934년 12월 24일에 쓴 시 ‘내일은 없다 -어린 마음이 물은’에서도 또렷이 드러난다. 청소년기의 윤동주가 이미 어떤 질문을 품고 있었는 지를 보여주는 이 시에서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내일 내일 하기에 / 물었더니 / 밤을 자고 동틀 때 / 내일이라고 / 새날을 찾던 나는 / 잠을 자고 돌보니 / 그때는 내일이 아니라 / 오늘이더라 / 무리여! 동무여! / 내일은 없나니”
‘윤동주 100년 포럼’이 엮은 <윤동주 전 시집>을 넘기다 나의 마음을 붙잡았던 시, 열일곱 ‘어린’ 동주는 막연한 미래에 기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이미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년 동주>는 바로 이 ‘어린 마음의 질문’이 어떻게 한 시대의 시정신으로 성장해 갔는지를 서사로 풀어낸다.
이 소설이 집중 조명하는 북간도와 평양 시절은 윤동주의 내면이 형성된 중요한 시간이다. 일제 강점기, 우리말로 시를 쓰겠다는 그의 꿈은 순수했고 동시에 위험한 선택이었다. 조선으로 문학을 공부하러 가겠다는 아들과 이를 말리는 아버지의 갈등, 개인의 꿈과 시대의 억압이 맞부딪히는 이 장면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별을 향해 오늘을 살았던 소년
이 작품을 읽으며 윤동주의 자취를 따라 걸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2007년 용정 대성소학교에서, 2019년 교토의 도시샤대학에서, 그리고 작년 연희전문학교(연세대)에서 그의 숨결을 느끼며 시비에 새겨진 시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한중일을 잇는 그의 삶의 궤적 위에서, 윤동주는 늘 시대와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한 소년으로 서 있었다. 이러한 기억은 자연스럽게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소년 동주>는 과거의 청소년 윤동주와 오늘의 청소년을 나란히 세우며 ‘꿈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꿈을 꿀 자유조차 없었던 시대의 소년과, 선택지가 너무 많아 방황하는 오늘의 십 대는 다른 시대를 살지만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내일은 없다”는 소년의 자각은, 결국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나태주 시인은 이 작품의 추천사에서 “한국말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은 윤동주 시인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소년 동주>는 그 빚의 정체를 거창한 수사 대신, 한 소년의 흔들림과 선택, 그리고 오늘을 살아내려는 마음으로 조용히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윤동주를 다시 읽게 할 뿐 아니라, 오늘의 청소년과 어른 모두에게 ‘나는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별이 된 시인이 아니라, 별을 향해 오늘을 살았던 한 소년의 시간을 통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단단한 용기를 건넨다.
고수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