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서: What Are You Going Through
소설의 시작은 ‘한 남자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로 시작된다. 첫 문단은 ‘난 그 친구를 보러 왔다. 수년 동안 만나지 못했고, 병이 위중하여 어쩌면 다시는 못 볼 수도 있는 사랑하는 나의 오랜 친구’로 끝난다.
사랑하는, 나의, 오랜, 친구… 이 네 단어로 벌써 이 책이 좋아진다.
이 책은 소설이라 하기에는 에세이 느낌의 책이다. 처음에는 미국의 문화라고 해야 할까? 너무 많은 생소한 인물과 인용구들 그리고 너무 많은 주변인의 신변에 관한 이야기가 섞여 집중되지 않아 짜증이 났다. 책을 읽을수록 책 속에 나오는 화자의 주변 인물들이 실제 인물인 듯,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는 착각에 빠져든다. 심지어 화자가 읽는 미스테리 소설 속의 주인공들마저… 책을 덮고 나서 잠시 멍했다. 아 정말 글을 잘 쓰는 사람이구나!
옮긴이의 말처럼 “인류문명의 종말을 주제로 한 화자의 전 애인의 강연과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둔 친구를 두 축으로 한, 인류문명의 죽음과 개인의 죽음”이라고 덤덤하게 책을 소개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거리들이 숨겨져 있다.
특히 전 남자 친구의 강연에서 많은 걸 공감하게 된다. 인류는 이렇게 망해가는데 정작 우리에게는 이 대재앙을 막으려는 어떤 집단적 의지도 없음이 분명하다고. 다 끝났다고. 그러고는 사회를 구원하는 것보다 자기 돌봄, 일상의 걱정에서 벗어나는 것,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들이 우리가 사는 궁극의 목표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팩트 폭격!(나에게 말하는 줄!) 그렇지만 책 속 그의 강연 내내 느껴지는 냉소와 달리 나는 그가 화자에게 던져주는 짧은 말 한마디에 큰 위로를 얻는다.
“하지만 당신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을지는 상상이 가지 않아.”(p178.)
화자는 무서웠을 것이다. 어쩌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친구보다 친구의 죽음을 예행연습 삼아(친구의 말이다)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죽음까지 더해진 공포였을 것이다.
이 외에도 친구의 유머 감각과 은근 허당기 있는 에피소드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들, 처음에는 연민으로 시작된 타인에 대한 호의들이 변해갈 때 스스로에게 느끼는 수치심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옛말이 생각났다) 혹은 그 수치심조차 숨길 생각이 없는 어떤 남편의 이야기.
책을 읽는 내내 새로이 알게 된 지식들 덕분에 조금 더 똑똑해진 느낌도 뿌듯하다. 책 속에 소개된 명언들, 영화들에 뭔가 잔뜩 일거리를 얻어온 느낌이지만 기대감으로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다.
몇 가지 여운이 남는 문장들을 적어본다.
‘친절하라. 네가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으니.’ (p59)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Que lest ton tourment?’ (p122)
마지막에 화자는 말한다.
나는 애를 썼다. 사랑과 명예와 연민과 자부심과 공감과 희생– 실패한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p252)
그래 실패한다 한들, 사랑과 명예와 연민과 자부심과 공감과 희생이 있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 이런 친구가 있다면,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다.
변영아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