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이후 우리 사회는 세대와 진영으로 갈라져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이것 앞에서는 한마음이 되었다. 항간에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얘기다.
드라마를 보면서 나랑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던 장면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애순이가 ‘물심양면’에 밀려 급장 선거에서 표를 제일 많이 받고도 부급장이 된 대목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반장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선생님은 얼굴이 뽀얀 남자애와 나를 앞으로 부르시더니 그동안 받은 상장과 성적표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다음날 가져간 상장은 내 것이 훨씬 많았다. 성적도 압도적으로 내가 더 좋았다. 선생님은 약간 난감해하시더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남자애를 반장, 나를 부반장으로 임명하셨다. 우리집이 가난해서라기보다는 반장이 된 남자애의 엄마가 치맛바람으로 유명한 분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반장에 대한 욕심이 그닥 없었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처신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옹색해 보였다. 그냥 그 애를 반장 시키면 될 일이지 뭐 하러 선거는 하고 귀찮은 심부름을 시킨단 말인가.
또 하나는 애순이가 금명이의 자취방을 정리하러 갈 때였나? 한 철 신으면 못 신을 신발들이 잔뜩 있는 걸 보고 애순이가 어이없어하는 장면이다. 영국에서 공부하던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러 갔을 때였다. 딸의 숙소에 가서 짐을 정리하려고 보니 딱 책상과 침대 만 겨우 놓인 좁은 방에 왜 그리 신발만 많던지. 원하는 걸 잘 말하지 않는 딸이 처음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혼수 미리 해주는 셈 치고 보냈던 터라 생활비를 여유 있게 줄 수 없었다. 유학생 비자로는 아르바이트 시간도 제한이 있어서 용돈이 늘 부족했을 것이다. 비싼 물가에 문화생활도 쇼핑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본인이 유일하게 사치를 부린 것이 저렴한 신발들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혼자 눈물을 삼켰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일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알기 어려운 디테일인데 드라마에서 그걸 재현해 내는 걸 보고 신기했다.
[사진=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나는 이 드라마에서 애순이 같은 엄마도, 관식이 같은 아빠도 부러웠지만, 제일 부러웠던 것은 세 이모들이다. 양푼에 한가득 밥을 비며 습관처럼 숟가락을 세 개 꽂아서 내놓던 그녀들의 허물없는 의리와 우정이 부러웠다. 애순이 엄마가 일찍 죽은 뒤, 애순이가 힘들 때마다 곁을 지켜주고 편을 들어주고 싸워주었던 단단하고 든든한 그녀들의 힘은 그러한 연대에서 나왔을 것이었다. 애순이가 막내를 잃고 시름에 잠겨 누워있을 때, 보이지 않게 십시일반 어린 금동이와 은동이를 먹여 살린 그 힘이 다시 애순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 힘은 다시 자신들을 살리고 마을을 살리는 힘이 되었다. 애순이가 시인이 되기까지 엄마의 생애와 할머니의 생애, 그리고 이웃의 따뜻한 관심과 돌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스스로 생존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공존의 문제 역시 내 삶의 조건과 환경이 되기 때문에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AI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갈수록 좋은 일자리는 없어지고, 사회적 안전망을 대체해 왔던 가족마저 붕괴되고 있는 이 각자도생의 시대에,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 딸을 위해 물질을 하고 돌밭을 일구던 애순이 엄마의 마음으로, 견디기 힘든 상실과 고통으로 주저앉아 있을 때 몰래 쌀독을 채워주던 이웃의 마음으로, 애순이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백일장에 애순이 작품을 접수시킨 이모의 마음으로, 그래서 훗날 시인이 된 애순이가 할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쳐주는 마음으로, 엄마들과 함께 커다란 나무를 심고 그 나무 그늘에서 아이들이 자기 꿈을 펼치도록 돕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