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서 고등학교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친구는 인문계에 갈 성적이 안 되었고, 어떤 친구는 외고 입시에 실패했다. 나는 그저 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뿐인데, 세상은 이미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선별하고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인지와 공부는 분리되어 있었다. 이후 갑작스럽게 닥친 불행 속에서 내 삶의 방향을 결정했던 건, 내 삶을 가볍게 만들고자 했던 욕구였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마음을 저버린 선택은 나를 오랜 정체성 유실 상태로 몰아넣었고, 삶의 기준점들을 잃어갔다. 경험 없이 축적된 지식들은 내 삶에서 식자우환을 만들어 냈고, 안정적인 조건은 유한마담 병처럼 생계의 절실함을 지운 채 심리적 고민을 증폭시켰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교육 문제에서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좋은 대학에 가봤자 뭘 하지?”“공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들과 학업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한쪽 어깨가 저려왔다. 그 시점에서 상하이에 왔고, 김건영 선생님을 만났다. 20년 가까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 온 분이셨다. 선생님은 입시가 끝이 아니며,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이라고 하셨다. 나는 내 삶 전체를 돌아보며 절절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AI시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간담회를 여시고 김건영 선생님은 강조하셨다. 아이가 어디에서 반응하고, 무엇에 몰입하는지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더이상 답을 맞히는 교육 이상으로 질문하는 힘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질문은 ‘내가 모르는 것’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하지만 자신과 연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아이는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이가 직접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지는 상황에 놓여야 한다. 질문을 위한 질문이 아닌, ‘나만의 질문’이 나오는 것이다. 그 질문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자기 탐색이 이루어지고 몰입과 사고력이 길러진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기 보다는, 정말 간절하게 해결하고 싶은 일을 벌려볼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지금, 현실에서 자기 삶의 인턴십을 경험하는 것이다. 부모들이 힘을 모아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실현해볼 기회를 얻고, 그것을 도울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기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자기 생활을 이해하게 되며, 공부 또한 탐색의 기회와 문제 해결의 도구로 연결된다.
소비만 하는 아이가 아니라, 주인이 되어 환경을 활용하는 아이로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스스로 삶을 책임지고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이것이 아이도 원하고, 부모도 원하고, 대학과 사회가 원하는 교육이기도 하다.
간담회 도중, 혼자서라면 이 방향을 실현할 수 있는 거라고 믿을 수 있었을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다. 아이를 키우는 데에만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의 마음을 키우는 데에도 공동체가 필요하다. 부모가 함께 협력해야, 아이들도 자기 삶을 실현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뮤약사(pharmtende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