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학교 졸업식 날, 교감 선생님께서는 졸업 선물이라며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짐승이 되지 말고 진짜 사람이 되어라. 어린 마음에 알쏭달쏭하면서도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 읊조리며 가슴에 새겨두었다. 이 말이 맹자의 가르침임을 다 커서야 알게 되었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인의(仁義)를 실천하고 선한 본성을 지켜갈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 상하이에서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잊지 못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내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었던 이들이다. 그때 먹은 밥은 허기진 영혼을 달래는 보약과도 같았다. 첫아이를 임신하여 입덧으로 힘겨워할 때 정성껏 비빔국수를 삶아주던 이웃, 고된 육아로 지친 내게 보글보글 찌개를 끓여주던 미정 언니, 남편과의 다툼으로 마음 아파할 때 진수성찬을 차려주던 화란 언니, 고기 먹고 힘내라며 베란다에 앉아 고기를 굽던 지영이, 아플 때 먼 길 마다하지 않고 먹거리를 챙겨 보내주던 정원이, 멀리 북경에서 초코 쿠키를 구워 보내주는 선영 언니, 갓 구운 빵을 무심한 듯 건네주고 가던 진선 씨. 고마운 이들을 모두 헤아리려니 열 손가락이 모자랄 지경이다.



앞만 보며 달려오다 잠시 멈춰 섰을 때, 나를 향해 환히 웃어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받았던 사랑만큼 베풀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슬퍼진다. 누군가 내게 “너는 지금 사람답게 살고 있느냐?”라고 따져 묻는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고마운 이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냐고 채근하는 듯도 하다.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 갚아야지. 마음으로 기도하고 빌어주는 것도 보답이겠지.’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주지 못한다는 아쉬움에 이따금 마음이 무거워지곤 한다.
이런 내 마음을 오랜 벗에게 털어놓았다. “사람 노릇, 사람 도리를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아 우울해”라고 말이다. 친구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도대체 사람 도리가 뭘까? 네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 게 바로 사람 도리가 아닐까? 아이들 잘 키우고 가정을 잘 꾸려가고 일도 열심히 하고 있잖아?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네게 선행을 베풀었던 사람들은 그저 네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랄 뿐이야. 그러니 그런 자책은 하지 마.” 나보다 어른이 된 친구의 위로에 다시금 힘을 내본다.



오래전 이 고마움을 어찌 다 갚냐고 묻는 나에게 ” 나한테 갚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갚아. 복은 늘 돌고 도니까. 그 대상이 꼭 내가 아니라도 괜찮은 거야.” 라던 이웃의 말이 떠오른다. 나도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빛이 또 다른 곳을 비추며 선순환되길 바란다. 교감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나를 성찰할 수 있었고, 이웃들의 따스한 사랑 덕분에 진정 사람다운 삶을 실천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